호남제주팀장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2리는 제주도 서남쪽에 있는 중산간마을이다. 버스 운행도 드문 고즈넉한 동네다. 제주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안팎 거리로 대도시 사람이 보기엔 제주시 외곽이겠지만, 제주사람들의 관념에서 보면 제주에서는 꽤 먼 곳이다. 이 지역은 최근 몇 년 동안 제주에 불어닥친 부동산 투기 열풍에서도 상대적으로 비켜나 있다. 마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올레길이 나면서부터다. 제주올레 11코스 종착점과 12코스 시작점이 이곳이다. 대문 없는 집, 넓은 들판에 펼쳐진 밭과 밭, 고층 건물이 없는 마을 경관 등은 올레꾼들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제주 마을의 특성을 보여준다. 감귤이나 한라봉도 재배하지만 밭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도 많다. 대정읍 지역의 마늘과 양파 등의 품질은 제주 최고를 자랑한다. 지난 16일 조용하던 마을이 들썩였다. 제주에서 열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 개막식 참석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마을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무릉외갓집(영농조합법인)을 찾아 제철 농산물 꾸러미를 직접 포장하고 주민과 대화를 나눴다. 2009년 설립된 무릉외갓집은 마을 농민들이 생산한 감귤, 한라봉, 메밀, 보리쌀, 감자, 마늘, 양파, 고사리, 좁쌀 등을 회원들에게 판매한다. 참여 농가는 마을 전체 194농가 중 42농가다. 앞으로 참여 농가를 점차 늘릴 계획이다. 회원 수는 월간 꾸러미(회원) 347명, 인근 제주영어교육도시 내 외국인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주간 꾸러미 94명이다. 무릉외갓집은 농촌마을과 자매결연한 자매기업 간의 소통과 신뢰의 결과물이다. 마을 주민들의 참여와 ‘무릉외갓집’이라는 브랜드를 만든 공기청정기 전문회사 ㈜벤타코리아의 열정, 그리고 이를 연결해준 제주올레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무릉외갓집을 만들 무렵 고완유 마을 이장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마을 공동사업을 고민했다. 이에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과 기업의 자매결연을 추진하던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벤타코리아의 김대현 대표를 연결했다. 김윤우 무릉외갓집 대표는 “김대현 대표가 자주 마을에 와서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어떤 방식으로 판매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하고 자문해줬다. 이렇게 해서 ‘무릉외갓집’이 탄생했다. 만 8년이 됐는데도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지원해주는 고마운 분이다. 열정적인 분을 만난 것은 마을의 행운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대현 대표는 남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실제 농촌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장님을 포함해 주민들이 사명감을 갖고,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줘서 가능했다. 무릉외갓집의 성공은 우리와 제주올레,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하나가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역 주민들이 주도해 스스로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무릉외갓집’의 경제모델이 인상 깊다”고 주민들을 격려했다. 대통령이 다녀간 뒤 무릉외갓집 누리집은 다운될 정도로 접속자가 폭주했고, 유료 회원도 늘었다. 다른 지방에서 벤치마킹하겠다며 방문 의사를 밝히는 이들도 생겨났다. 무릉외갓집은 마을의 문화 갈증을 덜기 위해 마을극장이나 스튜디오 등을 만들어 마을공동체의 구심점 구실을 할 공간도 계획하고 있다. 최소한의 투자를 통해 주민들이 일주일에 한 번, 보름에 한 번이라도 모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행복일 것이라는 게 김윤우 대표의 생각이다. 제주는 물론 강원과 전남 등 전국 각지의 농촌마을이 시도해볼 만한 마을공동체 모델이자 경제모델일 듯하다.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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