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기자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홍정은’이다. 본인은 ‘홍트럼프’를 원하겠지만, 미국 대통령보다는 북한 김정은에 가깝다는 얘기다. 왜 그런가 보자. 북한에는 황장엽이 없고, 남한엔 황장엽이 세상을 떠난 지금, 주체사상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홍 전 지사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문재인 정부의 본질이 주사파 정권임을 단박에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법이다. 원조 주사파인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문재인 정부는 주사파 정권이 아니다. 낡은 종북몰이는 그만하라”고 하는데도, 홍 전 지사는 “이 나라가 주사파 운동권들의 세상이 됐다”며 우울해한다. 이 정도면 우리가 모르는 주사파의 비의적 세계관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얘기다. ‘빨간약’ 먹고 각성해 주사파의 매트릭스를 간파한 것이 분명하다. 주사파 정권에 갇혀 선지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현실 세계의 대체적 판례는 저 정도 의도성과 반복성과 근거 없음과 뻔뻔함을 단호히 처벌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어쨌든 수령론에 눈뜬 홍 전 지사는 당장 북한에 넘어가도 노동당의 전위로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홍 전 지사는 빨간색을 좋아한다. 넥타이도 빨간색만 맨다. 홍정은인 이유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빨갱이 몰이가 억울하면 본인도 안 하면 그만이다. 아무 때나 웃는다. 홍정은인 이유다. 돼지발정제를 섭취하지 않아도 온갖 막말을 쏟아내고 이를 비판해도 그냥 웃어넘긴다. 자기 머리를 그렇게 웃기게 잘라 놓아도 미사일 쏜다며 좋아라 웃는 김정은식 멘탈이다.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가 등장인물 4천명을 채우려다 2천명에 그쳤다는 <인간희극>을 마저 쓴다면 홍 전 지사는 정치인 부류의 주인공 중 맨 앞에 세울 만하다.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으며 구체성도 개연성도 상실한 채, 시민의 시대에 오로지 서민이라는 한때 자신의 출신성분을 출세의 욕망과 교묘히 결합하려는 그 의지는 단연 21세기 인간희극의 한 자리를 차지할 법하다. 발자크 시대 유행했던 소설 제목을 본떠 <홍준표 영감>, <야당 또는 집 나간 정신의 순례기>, <홍준표의 영광과 비참>, <정직한 검사의 법전 또는 사기꾼에게 속지 않는 법> 등의 제목을 단다면, 19세기의 총체적 풍속화를 그리려 했던 발자크적 느낌을 21세기에 나름 되살릴 수 있으리라. 홍 전 지사는 당 대표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언론에서 나를 어떻게 비판하느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다만 조롱거리나 비아냥 대상이 되는 건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이제 그는 그런 언론들을 없애버리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애써 홍트럼프를 꿈꾸는 모양이지만, 백악관 출입기자들도 트럼프와의 뜨뜻미지근한 낭만적 사랑은 바라지도 않는다. 발자크는 우리말로 번역되길 <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라는 책도 썼다. 정치 저널리스트를 향한 신랄한 풍자를 담았지만 이런 말도 있다. “별 볼 일 없는 정치인일수록 신문사에서 부처님 같은 대접을 받는다.” 홍 전 지사는 어떤 언론들한테는 부처 대접을 받을 테니 기분을 풀어도 좋겠다. 사람보다 이름이 먼저 죽는 경우가 있는데 홍 전 지사가 그렇다. ‘홍준표’라는 이름은 퇴출돼야 할 한국 정치의 일반명사가 됐다. 그런 그가 제1야당 대표가 되겠다고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는 살불살조의 용맹정진을 제1야당에 기대하기는 무망한 일인 듯싶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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