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청약제도가 도입된 지 올해로 40년이 된다. 1970년대 들어 부동산 투기가 땅에서 아파트로 옮겨가자 정부는 1977년 8월 ‘국민주택 우선공급 규칙’을 만들었다. 투기를 막고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을 지원한다는 취지였다. 무주택 세대주가 청약통장에 가입해 일정 기간 일정액을 납입하면 청약 1순위 자격을 주었다. 1세대에 1계좌만 허용됐다. 청약통장이 내집 마련을 위한 필수품이 되었다.
1980년대 들어 분양권 전매와 ‘0순위 통장’ 등 청약제도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다시 투기 광풍이 불었다. 투기세력의 대명사인 ‘복부인’이 활개를 친 때다. 당시 화려한 의상의 고위층 부인들이 앞다퉈 부동산 투기에 나섰다고 해서 복부인을 상징하는 ‘빨간 바지’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 초 주택 200만호 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청약제도가 재정비됐다. 분양권에 당첨된 적이 있으면 1순위 자격에서 제외했고 분양권 전매도 금지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지면서 1999년 청약 관련 규제가 대폭 풀렸다. 20년 넘게 지켜온 ‘1세대 1계좌 원칙’이 폐지됐다. ‘묻지마 청약’이 기승을 부렸고 분양권 프리미엄이 억대로 치솟았다.
부동산 투기와 전면전을 벌인 노무현 정부는 청약제도의 원래 취지를 되살려냈다. 분양권 재당첨을 금지했고 전매 제한을 최장 10년으로 늘렸다.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를 우대하는 ‘청약 가점제’도 처음으로 도입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전부 되돌려버렸다. 특히 2014년 박근혜 정부의 ‘9·1 부동산 대책’이 문제였다. 청약 1·2순위를 1순위로 통합했고 만 19살 이상이면 세대주가 아니더라도 청약통장을 개설할 수 있게 했다. 재당첨 제한도 풀었다. 분양권 전매차익을 노려 청약통장을 들고 전국을 누비는 ‘청약 쇼핑족’이 등장했다. 서울과 수도권, 부산, 대구 등 요지를 돌며 투기를 일삼았다. 최신판 복부인인 셈이다. 분양 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들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7일 기자간담회에서 “통장을 만들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며 “실수요자가 집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청약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기회에 부분 손질을 넘어 누더기가 되어버린 청약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원칙과 기준은 김 장관의 취임사대로 하면 된다.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입니다. ‘돈’을 위해 서민들과 실수요자들이 ‘집’을 갖지 못하도록 주택 시장을 어지럽히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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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서울.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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