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팀장 두세 달 사이 역사적 영토와 관련해 한국 민족의 자존심 내지 콤플렉스와 연결되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식민사관-유사 역사학’ 논란이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서는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더라”라고 말한 것도 파장을 일으켰다. 먼저, 땅과 마찬가지로 재생산이 불가능한 기독교 성유물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중세에 예수의 머리카락이나 옷, 십자가 조각, 창, 못 등 처형 도구에 대한 수요가 커지자 가짜가 나돌았다. 이에 `예수가 몇이라도 성유물 양을 맞추기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만일 현존하는 유라시아대륙 민족과 국가들이 각자 가장 번성했던 시대의 영토를 주장하면 어떨까? 성유물은 복제품이라도 만들 수 있지만 땅은 그러지 못하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최전성기의 영토(일부는 유라시아와 연결된 북아프리카 포함)와 지금 연고권을 주장하거나 주장할 수 있는 나라들의 크기를 대략 비교하면 이렇다. 로마제국은 이탈리아의 16배, 우마이야조는 시리아의 60배, 압바스조는 이라크의 25배, 몽골제국은 몽골의 15배, 티무르제국은 우즈베키스탄의 10배, 오스만튀르크는 터키의 7배다. 이웃 그리스와 서로 알렉산더의 적통이라고 다투는 현재의 마케도니아는 마케도니아제국의 200분의 1 크기다. 여기까지는 이름깨나 있는 제국의 후예들인데, 수없이 명멸한 민족과 국가, 현존하는 다른 국가들까지 포함하면 ‘견적’이 안 나온다. 지금은 발트해에 바짝 붙어서 러시아가 또 쳐들어올까 걱정하는 리투아니아는 14~15세기에 현재보다 15배는 큰 영토로 흑해까지 닿으며 러시아인들을 위협했다. 결국 유라시아대륙이 몇 개는 돼야 각 민족·국가들의 ‘역사적 영유권’ 주장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비교사적 관점에서 보면 영토 콤플렉스를 지닐 이유가 별로 없다. 열등감은 남보다 못하다는 인식에 기반하는데, 실지(失地)에 관해서라면 더 드라마틱하고 시간적으로 가까운 사례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천년도 더 지난 ‘광활한 만주 벌판’의 상실에 아쉬움을 넘어 비통을 느낄 필요까지는 없다. 한반도 왕조들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 문제 역시 단순한 계산과 평가로 상심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시작점이 후한과 대략 맞물리는 기원후부터 중국사 연표를 보자. 4세기에 최초의 이민족 지배기인 5호16국 시대가 열린 이래 남북조, 요, 금, 원, 20세기에 망한 청까지 몽골-튀르크계와 만주족 계통의 이민족 지배가 되풀이됐다. 게르만족의 유럽 정복과 비견된다. 중국 중심부는 기원후 시기의 대략 3분의 1은 이민족 지배하에 있었다. 한반도를 정치·군사적으로 더 강하게 압박한 쪽은 요·원·청 등 이민족 왕조들이다. 이런 맥락은 무시하고 지금의 중국을 대입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다면 이는 몰역사적 단순화다. 동시에 한족의 인종주의적 편견일 뿐이다. 시 주석이 정말 그렇게 발언했는지, 트럼프가 곡해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시 주석이 실제로 한 말이라면, 천안문 성벽에 “세계 인민 대단결 만세”라고 대문짝만하게 써붙인 중국공산당 수장으로서 유감스런 인식을 소유한 것이다. 프랑스 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다른 학문들까지 섭렵하는 특징을 이유로 “역사학은 제국주의적 학문”이라고 했다. 고대 국가 강역 등을 놓고 학문적 실증 차원의 치열한 논쟁은 당연하다. 하지만 패권에 집착하면서 자민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지나치게 투영하면 역사는 제국주의적 판타지에 그치고 말 것이다. eb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