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팀 선임기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지지도 80%의 대통령이 자존심을 꺾고 양보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을 국민의당에 보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에 대해 사과한 것도,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포기한 것도 놀랍다. 문재인 대통령은 본래 법조인이다. 법조인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다. 정의를 앞세우고 논리적이다. 정치인은 다양한 차이와 이견을 조정하는 사람이다. 협상과 거래, 대화와 타협에 능숙하다. 법조인이 정치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다. 독일에서 돌아온 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아슬아슬했다. “야당이 다른 것은 몰라도 추경과 정부조직 개편을 인사 문제나 또는 다른 정치 문제와 연계시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11일 국무회의) “저는 막 엄청난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그러고 이제 국내에 들어오니까 국회나 정치 상황이 딱 그대로 멈춰 있어서….”(12일 5부 요인 초청 오찬) “어떤 이유에서건 정치적 문제로 국민이 희생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길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13일 수석·보좌관 회의) 13일 발언은 특히 아찔했다. 대통령과 국민을 한편에, 국회와 야당을 다른 한편에 세워 대치시켰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9월17일 국무회의에서 “저도 야당 대표로 활동했고 어려운 당을 일으켜 세운 적도 있지만, 당의 목적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형적인 반정치주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 양보를 결행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덕분에 국회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짧게 보면 대통령이 밀린 것 같지만 길게 보면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다. 정치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문재인 정치’의 시작이다.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크게 변화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군림했다. 국회의원들을 임명하다시피 했고, 마음에 안 들면 국회를 해산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장악하려고 했다. 정계개편으로 다수 의석 확보를 시도했다. 잘 안됐다. 제왕적 총재의 시대가 지난 뒤 권력을 잡은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분리, 당청분리를 선언했다. 사실상 결별이었다.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총재가 아니면서도 여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려 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의 시대였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가장 많이 다른 점은 민주당 정부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당정일체, 당청일체가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의 주동력이다. 전·현직 의원과 당직자 출신들이 정부와 청와대 곳곳에 포진했다. 당정 정책협의가 활발하다. ‘문재인 정치’의 성공적 출발을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국회를 정치의 중심에 둬야 한다. 대통령제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대통령 혼자 국정에 대해 모든 권한을 행사하고 모든 책임을 지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대통령제는 국회와 대통령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한 분립형 권력구조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은 국회의 입법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거나 통화했다는 국회의원을 찾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와 국회의원을 좀 더 가까이해야 한다. 둘째, 민주당 의원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민심을 아는 120명의 집단지성은 소중한 것이다. 대치 정국을 푸는 과정에서 우원식 원내대표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 좋은 전례가 될 것이다. 6공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김윤환 원내총무에게 전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여소야대 국면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셋째, 임종석 비서실장과 이낙연 국무총리를 활용해야 한다. 임종석 실장은 본래 문재인 대통령 사람이 아니었다. 발언권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정치인이다. 정세 판단이 정확하고 정무적 감각이 탁월하다. 이낙연 총리를 임명한 이유가 호남 배려 한 가지는 아닐 것이다. 이낙연 총리도 정치적 상상력과 소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화가 가능하다. 두 사람은 ‘문재인 정치’의 양 날개를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정치인이다.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모습은 안정감을 준다. 다행이다. shy99@hani.co.kr
연재성한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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