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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캐비닛

등록 2017-07-17 18:01수정 2017-07-17 19:58

한자 각(閣)은 ‘기둥 위 높은 곳에 바닥을 깐 건물’이다. 명나라, 청나라 시대에 황제는 궁궐 안(內)에 누각을 짓고 경륜 있는 사람들을 모아 정치를 보좌하게 했다. 여기에서 내각이란 말이 나왔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내각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규장각의 별칭이었다. 오늘날 내각은 ‘행정권의 집행을 담당하는 최고의 합의기관’을 말한다. 메이지시대에 일본인들이 ‘cabinet’의 번역어로 ‘내각’을 선택했다.

프랑스어 카비네(cabinet)가 오늘날 ‘내각’이 된 것은 영국 왕 찰스 2세 때의 국정운영에서 유래한다. 찰스 2세는 의회와 대립하다 단두대에서 처형된 찰스 1세의 장남이다. 청교도 혁명이 진행되는 도중 프랑스로 피신해 지내다, 서른살에 돌아와 왕정을 회복했다. 당시 영국 왕은 귀족집단으로 구성된 추밀원의 조언을 받았는데, 찰스 2세는 그 가운데 5명을 뽑아 중요한 국무나 의회 대책을 궁정 깊숙한 곳의 작은 방에 모여 협의했다. 다섯 사람의 이름 앞글자를 따 커밸(CABAL)이라 했던 이 그룹을 찰스 2세는 프랑스어로 작은 방을 뜻하는 캐비닛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왕과 총신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사적’이었다.

미국에서는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이 1793년 처음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부 핵심 멤버들을 ‘캐비닛’이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내각을 공식적으로 캐비닛이라고 일컬은 것은 1907년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각을 마무리해 가는 와중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옛 캐비닛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건 자료 300여종이 나왔다고 한다. 청와대 발표를 들어보니 사사로운 자료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 겨우 10쪽 분량의 문서를 넘기고, 나머지는 모두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 볼 수 없게 해버렸다. 그래선지 그 뿌리부터 비밀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캐비닛’이란 단어에 귀가 더욱 솔깃하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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