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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문화냉전의 전선 / 김성경

등록 2017-07-19 18:34수정 2017-07-19 20:54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지난 수년간 한국의 온갖 미디어에서는 북한을 두고 치열한 ‘문화전쟁’ 중이다. 특히 2011년 출범한 수많은 종편 채널은 온통 ‘북한’에 대한 적대적 이미지와 탈북자를 활용한 북한 체제 비방으로 방송시간을 메워왔다. 탈북자 방송출연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몇몇의 정치비평 형태로 시작하여 최근에는 북한 여성을 통해 한국 사회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주목할 점은 탈북자들이 보수 미디어의 주요 게스트가 된 것은 사실상 북한과의 ‘문화전쟁’이기보다는 한국 사회 내 반공주의와 분단을 중심으로 한 진영대립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사실이다. 단순화하면 ‘문화전쟁’의 전선은 남북 사이가 아닌 남한 내에 있다는 말이다.

분단 이래 계속되어온 남북 간의 ‘문화전쟁’은 사실 냉전 시기의 ‘문화냉전’과 닮았다. 여기서 ‘문화냉전’은 과거 미국과 소련 양국이 정치·경제·군사적 대립에만 머물지 않고, 문화적 헤게모니 수립을 통해 상대 진영 주민의 ‘마음’을 얻고자 했던 것을 일컫는다. 한때 남북 또한 상대 주민을 향해 유사한 문화적 경쟁에 몰두했지만 동구권이 몰락하고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이제는 남북 사이 ‘문화전쟁’의 양상이 분단에 기반을 둔 지배층의 권력 유지를 위한 ‘국내용’으로 전환되었다.

이런 사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최근 북한의 선전매체에 등장한 임지현씨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이다. 종편 티브이(TV)에서 활약하면서 자신의 팬클럽까지 있었던 그녀가 갑자기 월북한 것은 그녀의 증언을 통해서 남한 사회의 우월성을 확인받았던 수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부는 그녀의 월북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는지 조사를 시작하였고, 언론에서는 그녀의 월북 이유에 대한 온갖 추측을 쏟아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과거 행적은 낱낱이 폭로되기에 이른다. 중국에서 찍었던 동영상이 유포되었다는 추측부터 한국에서 어디서 일했다더라는 설까지, 사실 그녀의 월북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내용들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꽤나 잘 알려진 탈북여성의 갑작스런 월북의 합당한 이유를 찾아야만 하는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을 그녀 자신의 문제로 환원해버린다. 그녀는 북에 납치되었거나 그렇지 않다면 분명 개인에게 문제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남한 내 ‘문화전쟁’의 전선으로 탈북자를 적극 활용해온 한국 사회가 최근 증가세에 있는 재입북자를 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사실 한동안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북 확성기와 대북 전단, 대형 교회의 공격적인 북한 선교, 북한 내 한국 대중문화 유포 등은 분단 지배층이 어떻게 ‘북한’을 활용하여 남한 주민을 ‘반공’과 ‘분단’으로 결속시키고, 이를 통해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게다가 국내 정치적 셈법에 따라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삐라와 시디(CD)를 담은 풍선을 보내는 것보다 경제적 지원이나 문화적 교류가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너무나도 명징한 사실은 쉽게 왜곡되어 버렸다.

분단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정권교체로 바꿔낼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지난 수십년간 한국 사회 내 분열과 대립을 강화했던 이 지긋지긋한 ‘문화전쟁’의 전선을 교란할 진지 정도는 구축해야만 한다. 그람시의 ‘과정으로서의 혁명’을 되새겨보면, 한반도의 분단 극복이라는 ‘담대한 여정’은 바로 남한 내 ‘문화전쟁’의 전선을 무력화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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