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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드라마 속, 검사의 존재 이유 / 임범

등록 2017-07-24 18:37수정 2017-07-24 19:33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검찰 출입 기자를 한 탓에 검사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검사가 나오면 실제 검사와 닮았는지 사실성을 꼼꼼히 따져보는 버릇이 생겼다. 남들 다 재미있어하는데 나만 사실성이 떨어진다고 토를 달아 왕따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검사는 실제 검사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굳이 실제 검사와 닮아야 하나. 검사 캐릭터가 악역이든 좋은 역이든 그 존재 이유가 선악 대결의 박진감을 더하거나, 분노와 뒤따르는 응징의 쾌감을 상승시키기 위한 거라면 거기에 충실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검사의 사실적 묘사에 대한 기대를 잠재우고 있었는데….

드라마 <비밀의 숲>이 인기 속에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검사들이 나온다. 정의로운 주인공 검사(조승우)와, 나쁜 길로 들어선 검찰 간부(유재명)가 맞선다. 이 간부가 주인공에게 말한다. “우린 검사야. 뇌물 받기도 하고 접대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 전관예우도 바라고 사건을 밀어주기도 해. 갑자기 권력을 쥐고 명예를 얻고 날뛰기도 하지만 우린 검사야. 법을 수호하기 위해서 여기 왔어.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린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단죄를 내려야 할 부류들과는 다르다고 믿어. 아무리 느슨해져도 절대 타인을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

주인공이 이 간부와 연관된 살인사건을 캐다가 누명을 뒤집어쓸 위기에 놓였다. 간부가 주인공에게 ‘너 진짜 그랬어?’ 하고 다그치는데, 그게 질문이기보다 ‘너 똑똑한 놈이 왜 그런 실수를 했어?’ 하는 질책에 가깝다. 주인공이 누명을 쓰면 그에겐 좋은 일일 텐데 의외의 태도다. 나아가 주인공이 그에게 ‘당신이 죽이지 않았냐’고 몰아붙이자 앞의 말을 한다. 정말 검사들은 아무리 느슨해져도 타인을 해치지 않을까? 누구도 장담 못할 말이지만, 드라마는 이를 통해 중요한 의제 하나를 들이민다.

이 간부는 얼마만큼 타락한 걸까. 주인공을 못 잡아먹어 안달하면서도 막상 주인공과 둘이 마주할 때 협박하거나 회유하지 않는다. ‘너 옳고 잘난 거 알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이거나 이따금씩 ‘너마저도 치사한 짓 하려고 하냐?’ 하는 식이다. 주인공을 가장 신뢰하는 게 이 간부인 것 같기도 하다. 자기에게 해코지만 안 한다면 주인공이 잘되기를 바랄 것 같기까지 하다. 검사들이 쓸 법한 언어로 정확하게 번역된 대사가 이런 역설적인 감정까지 잡아내면서 캐릭터의 질감과 드라마의 사실감을 끌어올린다. 주인공의 상관 부장검사도 언어와 태도에서 배어나오는 노회함과 정의감, 냉소가 진짜 검사 같다. ‘저들이 정말 타인을 해치지 않을까? 사람이 초심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질 수 있을까. 멀어지게 하는 건 뭐고 멀어지지 못하게 하는 건 뭘까.’

검찰 출입을 오래 한 후배 기자가, 이 드라마 속 검사들의 사실감에 놀라 드라마 제작에 얼마나 협조해줬는지 대검찰청에 물어보기까지 했단다. 검찰에 대한 지식과 취재가 뒷받침됐겠지만 그것만은 아닐 거다. 검사의 초심이라는 의제를 놓지 않고 가려 하기 때문에 그런 사실감이 필요했을 거다. 검사뿐 아니라 정치인이든 기자든 사람의 초심을 중요하게 다루는 텍스트라면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세계가 사실적이지 않기도 힘들 거다. 중요한 건 캐릭터의 극중 존재 이유이다.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검찰총장이 주인공이 하는 수사를 막으면서 “내겐 검찰의 존재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어”라고 한다. 부장검사가 맞받아 말한다. “우리의 존재가 아니라 존재 이유를 지켜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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