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정에서 공개된 이른바 ‘원세훈 녹취록’은 국정원 선거개입·정치관여의 생생한 물증이다. 20여건 녹취록에는 원 전 원장의 육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앞서 <세계일보>가 보도하고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된 ‘SNS 선거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SNS 장악 문건’)을 비롯한 30여건의 문서나 2013년 5월 진선미 의원이 폭로한 두가지 문건을 보면 국정원의 이른바 ‘대국민 심리전’과 정치공작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원 전 원장은 2009년 6월19일 전 부서장을 모아놓고 “지방선거가 11개월 남았는데 우리 지부에서 후보들 잘 검증해야 한다”며 선거개입을 독려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4개월 전인 2011년 6월1일 작성한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 공세 차단’(‘등록금’) 문건에는 야당 주장의 허구성을 홍보자료로 작성해 심리전에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10월26일 보선에서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자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11월18일에는 “내년에 큰 선거가 두개나 있는데… 지부장들은 현장에서 후보들 교통정리가 잘 될 수 있도록 챙”기라며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전 직원이” 나서라고 지시했다. ‘SNS 장악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전달한 것도 그즈음이다. 이때 3차장 산하에서 대북심리전을 맡고 있던 심리정보단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개편하더니 이듬해 2월엔 심리전단 인원을 대폭 보강하며 댓글공작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이런 공작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SNS 장악 문건’을 빼돌린 청와대 정무수석실 전 행정관은 검찰에 “필요하면 (대통령에게도) 보고한다”고 진술했다. 특히 ‘등록금’ 문건에는 작성자와 해당 팀의 실명, 국정원 내선번호까지 적혀 있는데, 보고서가 대통령까지 올라갈 때 사용하는 양식(김당, <시크릿파일 국정원>)이라고 한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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