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회학 연구자 몇년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인기 덕분에 ‘하숙의 추억’을 떠올리는 기사들이 곳곳에 나왔다. 대부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지방 출신 하숙생’의 시각에 한정되어 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이동한 하숙생이나 하숙을 치는 사람의 ‘추억’은 공유하지 않는다. 서울 중심(그것도 특정 동네에 한정한), 공부 좀 했던 사람의 시각에서 형성된 추억을 나누며 그렇게 하숙에 대한 서사는 편향적으로 전수된다. 하숙집에서 밥 먹던 대학생이 아니라, ‘밥하는 아줌마’의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정 많은 서울 엄마’ 정도로 그린다. 이언주 의원이 속마음을 들켰을 뿐, 아줌마 멸시는 많은 이들에게 체화되어 있다. 집에 가서 밥이나 해, 애나 봐, 밥하다 나온 아줌마 같아, 동네 아줌마처럼 등등. 밥하고 애 보는 아줌마에 대한 멸시는 온 세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통일된 담론을 이룬다. 살아있는 한 멈출 수 없는 노동이지만 밥하는 일은 아예 노동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그냥 무시, 멸시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그 자체로 무시를 받는가 하면 꼭 그렇진 않다. 요리 대결을 하는 방송인 <냉장고를 부탁해>에는 만들어진 지 거의 2년이 지나 여성 셰프가 처음 출연했다. ‘요섹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자가 요리를 하면 성적 매력까지 발산한단다. 미디어 세계에서 맛은 남성들이 장악하는 반면 여성들은 집안의 부엌에서 부불노동을 하거나 식당이나 급식소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밥하는 아줌마’ 위치에 있다. 집안의 냉장고는 여자에게 부탁한 채(“여자라서 행복해요”라던 냉장고 광고를 기억해 보자), 대중문화 속의 냉장고는 남성 셰프에게 맡겨둔다. 미국에서 19세기 중반까지 교사는 주로 남성의 직종이었다. 교육에 큰돈을 내지 않으려는 정서가 팽배해서 교사의 임금이 낮았다. 그 결과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교사로 들어오니 능력이나 도덕성 면에서 문제가 많았다. 교사의 저임금을 유지하면서도 도덕성과 능력을 해결하는 과제는 바로 여성 교사에게 진입로를 열어주면서 해결되었다. 여성에게는 남성의 3분의 1만 줘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가 무엇을 뜻하는가. 저임금 노동에 여성이 진출하기도 하지만 여성이 하는 일이라 저임금이 되기도 한다. 남성 셰프와 밥하는 아줌마 사이의 거리는 단지 요리에 대한 지식이나 실력의 차이만이 아니다. ‘밥하는 아줌마’라고 부르며 네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려주겠다, 주제 파악을 해라, 라는 뜻이다. 여성과 남성의 성별을 흔히 안과 밖으로 나눈다. 안사람과 바깥사람. 이는 분업이 아니라 바깥에서 안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요즘 쓰이는 ‘내조외교’라는 희한한 말을 보면 여성의 ‘안사람화’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듯 남성에 의한 바깥 통치에 익숙하기 때문에 ‘밥하는 아줌마’를 비하하는 사람은 “외교는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 한다”는 말도 하기 마련이다. 외교 전문가가 아니어도 사람 사이에 밥 먹는 일은 외교의 연장일 때가 많다. 밥이야말로 강력한 외교 수단 중 하나다. “남편을 위해 요리하는 일과 한식 세계화 홍보는 외국에 나가 많은 일을 하는 대통령을 돕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접근했던 과거의 어떤 영부인의 ‘한식 세계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36년간 외교관 생활을 한 전직 외교관은 자신의 책에 아예 “하루 세끼 식사는 중요한 로비 수단”이라는 장을 둘 정도로 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가지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집으로 종종 손님을 초대했다던데 그 음식은 누가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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