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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100만원 / 손아람

등록 2017-08-02 18:23수정 2017-08-02 21:11

손아람
작가

몇년을 룸펜으로 보낸 끝에 나에게도 영화 각본을 쓸 기회가 주어졌다. 드디어! 야호! 계약서는 ‘나중에’ 쓰고 계약금은 ‘상황 봐서’ 받기로 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쓴 글이 영화로 개봉되는 거다. 마침내 나도 작가다운 작가가 되는 거다!

일주일마다 각본을 고쳐 쓰고, 매주 월요일에 감독의 평가를 받고, 다시 각본을 고쳐 썼다. 1년 동안 그 짓을 했다. 흥분은 빠르게 식었고 생활은 비참할 정도로 고통스러워졌다. 각본회의를 마치고 감독 겸 영화사 대표의 아우디 조수석에 얹혀 탄 채 시내를 빠져나오던 어느 날, 나는 핸들 위에서 번쩍거리는 자동차회사의 은색 로고를 노려보며 더는 못하겠다고 고백했다. “투자받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라. 여기서 그만두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야.” 그는 위엄이 서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투자 유치는 실패했고 영화는 좌초되었다. 실패한 건 그였고, 치른 비용은 내가 1년간 제공한 노동이었다. 내가 받은 돈은 100만원이었다. 회사의 손익계산서에 적혔을 적자액이기도 하다. 연봉 지출 100만원.

최근 영화 <아버지의 전쟁>의 제작이 중단되었다. 예산 30여억원이 투입된 프로젝트가 좌초하자 그 피해를 감수하게 된 건 스태프와 단역배우들이었다. 잔여 예산은 영화의 수익지분을 갖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지급되었고 예산적자는 미지급 임금으로 상쇄되었다. 단역배우 20여명의 미지급 출연료는 400만원, 스태프의 미지급 임금은 2억원에 불과하다. 사업 수익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사업 위험을 최대한으로 감수하는 방식으로 이 산업은 굴러가고 있다. 국방 비리를 고발하려던 영화는 영화산업의 그늘을 고발한 채로 붕괴했다.

그러면 실패 위험을 온몸으로 감수하는 예술노동자들이, 성공의 혜택도 입을까? 한동안 <한국방송>(KBS) 방송 배경음악 제작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음악제작사 로이엔터테인먼트 작곡가들은 몇년간 월평균 10곡 이상의 음악을 만들었다. 주말과 휴일은커녕 잠잘 시간도 없었다. 그들이 만든 음악은 한류열풍 덕분에 전세계 방송국의 전파를 탔다. 저작권료의 대부분을 회사가 가져갔고 작곡가들의 월급은 100만원이었다. 작곡가들은 노동운동을 다룬 드라마 <송곳>을 작업하던 중 자괴감에 사로잡혀 문제를 폭로했다.

최근 한 유명 영화편집회사 소속 편집기사들은 임금교섭에 계약 해지로 응답한 회사 대표를 노동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월 200시간 이상을 일한 이들은 겸업금지 계약에 묶여 스스로 얻은 영화 일거리까지 회사에 가져다 바쳐야 했다. 월급은 100만원이었다. 이 편집회사는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영화를 다수 작업한 곳이다.

지난달 말 아프리카에서 다큐멘터리 피디 박환성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다큐멘터리 저작권과 정부지원금의 40%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교육방송>(EBS)의 갑질을 폭로한 뒤 촬영을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 박환성 감독은, 제작비 절감을 위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가 변을 당했다. 그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 따르면 다큐멘터리 막내 피디들이 받는 월급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독립피디협회는 사고 수습을 위한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사회파 다큐멘터리 감독 박종필씨가 간암으로 별세했고, 김일란 감독이 위암 판정을 받았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두 감독은 지난겨울 동안 박근혜 퇴진행동본부에 몸담아 시민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김일란 감독이 소속된 다큐 창작 단체 ‘연분홍치마’에서는 600만원을 목표로 생활비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모금에 성공한다면 다큐멘터리 감독 1인당 월 100만원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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