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독일을 방문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역사적인 선언을 했다. ‘베를린 선언’은 한반도 냉전 종식, 북한 경제난 극복 지원, 이산가족 상봉을 주요 의제로 제시하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 당국의 만남을 요구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베를린 구상’은 형식과 내용으로 보아 17년 전 김대중의 베를린 선언에 이은 제2차 베를린 선언이라고 할 만하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우리 국민에게 베를린은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과 함께 기억된다”는 구절은 두 선언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베를린 구상’은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 이행을 포함한 5대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 북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 적대행위 중단, 남북대화 재개를 제안했다. “여건이 갖춰지면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는 의지도 담았다.
두 선언은 이렇게 서로 닮았지만 선언 내용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을 보면 차이가 발견된다. 김대중은 베를린 선언을 발표하기 전에 선언 요지를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전했다. 또 대통령 특사를 싱가포르로 보내 북쪽 특사와 만나게 했다. 두 특사의 비밀 접촉은 3차에 걸쳐 이어져 그해 4월8일 남북정상회담 합의로 열매를 맺었다. 안타깝게도 ‘베를린 구상’에는 이런 교섭 과정이 빠졌다. 남북이 서로 심중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물밑 대화가 생략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남북 채널을 모두 끊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와대가 미국을 의식해 대화 채널을 복구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로 베를린 구상이 어려움을 맞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실현 가능성은 남아 있다. ‘문재인의 구상’이 성공하려면 특사 교환을 포함한 남북 대화의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대국 압력에 주눅이 들면 안 된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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