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제재가 능사 아니다 / 박병수

등록 2017-08-06 20:51수정 2017-08-06 20:56

박병수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석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렇지만 아직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진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 가서 한반도평화구상을 밝혔지만 북한은 호응하지 않고 있다. 군사회담과 이산가족상봉 회담 제안엔 돌연 ‘화성-14’형 미사일로 응대했다. 유감이다. 그러나 북한의 ‘제멋대로’ 행동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자주 그랬다. 당시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길은 이런 북한을 어르고 달래가며 연 것이다.

남북관계가 북핵 문제를 앞서갈 순 없다. 북핵 문제가 기본적으로 미국이 나서야 하는 문제이고, 우리가 끼어드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하는 대로 그냥 맡겨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보면,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1989년 말 최호중 외교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북핵을 저지하겠다. 그러니 한국은 일방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 북핵 저지 약속은 30년 가까이 되도록 지켜지지 않았다. 다만 “북핵은 용납할 수 없다. 중국이 나서라”는 말로 대체됐을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최고의 압박과 관여’이다. 북한을 강력하게 경제제재해 고통스럽게 해서 대화로 나오게 하겠다는 것이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비판적으로 극복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하는 걸 보면 전략적 인내와 어떻게 다른지 알 길이 없다. 압박과 제재의 목적이 대화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전략적 인내도 늘 대화의 창이 열려 있다는 후렴구를 잊지 않았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해가 갈수록 강화됐다. 그러나 북한에 얼마나 고통을 줬는지는 의문이다. 유엔은 지난해에만 두차례나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이 지난달 21일 발표한 북한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9%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 리뷰 7월호는 북한의 밤 불빛 조도가 2000년대 이후 밝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소개했다. 실제 5~6년 전부터는 북한을 다녀온 외국 외교관들이 “평양의 거리가 밝아지고 화려해졌다”고 전하는 얘기가 언론에도 곧잘 소개되었다. 적어도 북한 경제가 경제제재로 큰 타격을 받는 모습은 아니다. 이번에 유엔의 여덟번째 대북제재가 다시 나왔다. 처음으로 석탄 수출을 금지하는 등 최강의 제재라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결의안이 나올 때마다 최강의 제재가 아니었던 적이 있던가.

제재와 압박이 능사가 아니다. 제재 강화가 자동으로 대화 국면을 열 것이라고 속단할 수 없다. 압박이 대화로 전환되기 위한 연결고리들이 섬세하게 배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 4월2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반도평화구상을 발표하면서 “중국을 설득해 6자회담을 재개하겠다. 미국을 설득해 북-미 관계 개선을 유도하겠다. 북한을 설득해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겠다. 우리가 주도하여 북한의 선행동론 대신 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의 동시 행동을 이끌어내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여기엔 과거 6자회담이 9·19 공동성명 등의 성과를 낳은 핵심 성공요인들이 잘 정리돼 있다. 지금도 한반도 국면을 대북 압박에서 대화로 전환하려 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연결고리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 실행하고 있는 대북정책 어디에 이들 연결고리가 배치돼 있는지 묻고 싶다.

su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