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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제3한강교 / 김영희

등록 2017-08-13 17:15수정 2017-08-13 19:32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700만 관객을 돌파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고 위르겐 힌츠페터 부인과 함께 본 영화 <택시운전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만섭이 가수 혜은이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 운전대를 꺾는 장면이다. 제3한강교. 한강에 놓인 네번째 인도교이자 나중에 한남대교로 이름을 바꾼 이 다리의 1969년 12월 완공은 ‘강남 개발 신화’의 시발점으로 불린다.

1960년대 초까지 사람들이 한강을 건널 방법은 나룻배 외엔 한강인도교(제1한강교)와 광진교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한국전쟁 당시 한강인도교 폭파의 기억은 여전히 트라우마였다. 광진교는 너무 낡았고, 1965년 완공된 제2한강교(양화대교)는 유사시 군사용으로만 쓰게 돼 있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씨는 <서울도시계획 이야기>에서 66년 제3한강교 건설에 착수한 배경이 남서울 개발 수요보다 ‘서울시민 유사시 도강용’이라는 군사적 필요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이 다리와 연결된 남산 1호터널 역시 유사시 30만~40만명이 대피할 방공호로 설계됐다.

원래 너비 20m의 4차선으로 설계됐지만 착공 석달 만에 26m, 6차선으로 넓히라는 건설부 지시가 떨어졌다. 북한이 평양 대동강에 너비 25m 다리를 건설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펴낸 <서울교통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강판을 제작해 현장에선 볼팅·가설만 하던” 시기였다.

‘제3한강교’가 히트할 땐 1970년 경부고속도로 완전개통과 ‘말죽거리 신화’를 거치며 한적한 농촌이 이미 황금의 땅으로 변하고 있었다.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밤이 새며는 첫차를 타고/ 이름 모를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라는 이 노래 애초 가사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검열에 걸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와 “행복 어린 거리로”로 바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80년 5월 광주시민들의 모습에 ‘행복 어린 거리로’라는 가사가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강남의 욕망이 꿈틀대던 시기, 광주에서 피가 흘렀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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