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인 <이미지의 배반>은 기이하다. 담배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역설적 의미의 텍스트를 적어 넣었기 때문이다. 관객은 누가 봐도 명백한 파이프의 이미지를 부정하는 텍스트 앞에서 당혹스러움을 경험한다. 이 그림은 이미지(‘파이프’)와 텍스트(‘파이프’)의 불일치를 폭로하면서, 동시에 실제와 재현의 관계 또한 문제시한다. 미셸 푸코는 마그리트의 그림을 분석하면서 실제와 ‘유사’한 재현이라는 것은 사실 허구에 불과하며, 재현은 이제 실제를 대체한다고 주장한다. 즉, 현대사회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시뮐라크르’(simulacre)로 가득하다. 최근 증폭되고 있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8월 전쟁설’을 마주하면서, 마그리트의 이 그림을 떠올린 이유는 두 가지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오간 ‘불바다’, ‘괌 타격’, ‘화염과 분노’, ‘전면전’ 등과 같은 언술이 특정한 이미지와 결합되는 양상을 주목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조선중앙텔레비전>은 김정은이 군사작전 지도를 펼쳐들고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괌 타격 준비가 끝났다는 내용을 보도하고, 한국과 서방의 언론들은 이에 뒤질세라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암시하는 온갖 군사적 이미지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자극적인 화면과 결합된 위협 언술은 더 큰 힘을 지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에 보도되는 북한과 미국의 위협적 레토릭과 자극적인 이미지 사이의 불일치를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 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의 모습과 괌 폭격, 미사일 자료화면과 한반도의 전쟁 사이의 빈약한 상관관계는 쉽게 은폐되고, 정밀하게 조율된 이미지와 표현은 오직 북한을 향한 적대적 인식과 감정만을 강화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과연 미디어에서 확산되고 있는 전쟁설이나 군사적 긴장이 현 상황을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는지 또한 의문이다. 한국과 서방의 미디어는 북한의 위협적 언술에 따라 미사일의 궤적과 주요 목표지역 등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마치 ‘사실인 것처럼’ 그려내고, 수많은 미사일 자료화면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마치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거기에 ‘속보’라는 헤드라인과 화려한 편집기술, 그리고 전문가의 해석까지 곁들여지면 북한의 실체에 대한 냉정한 판단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린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전쟁 미치광이라는 시뮐라크르가 북한의 실체를 대체하여, 그 자체로 실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시뮐라크르의 수행성이다. 시뮐라크르는 단순히 이미지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개입하여 특정한 실제를 만들어간다. 지금과 같은 북한의 이미지가 확산되면 될수록, 북한의 실제 상황이나 군사적 능력과는 상관없이 북한은 점점 더 큰 위협과 적대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걱정스러운 것은 곧 있을 한-미 군사훈련에서 만약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증폭되어온 두려움과 적대적 인식이 북한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나 이해를 압도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 한국 사회가 견지해야 할 자세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오가는 전쟁설에 당황하기보다 차분히 북한의 상황과 의도를 읽어내고 이해하는 것일 게다. 매 순간 쏟아지는 북한이라는 시뮐라크르의 실체와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떤 허위에도 현혹되지 않을 냉철한 시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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