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정 말기 최고의 연설가로 꼽혔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두상. 출처 위키미디어
기원전 65년 로마에서 폼페이우스 일파가 ‘파피우스’법을 제정해 대대적인 외국인 추방 운동을 벌이자, 그리스계 안티오키아 출신 시인 아르키아스가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위대한 연설가 키케로가 아르키아스의 추방을 막기 위한 변론에 나섰다.
키케로는 아르키아스를 구제하는 것이 곧 ‘학문’을 구제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과연 어떤 학문인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우리의 마음에 생기를 다시 불어넣어주는” 학문이다. “어떤 이는 별것 아닌 것으로 가볍게 여길지 모르나, 최고의 위력을 어떤 샘으로부터 길어올리도록” 하는 학문이다. “당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드는 불량배들의 공격에 이 한 몸을 내던지도록” 하는 학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목적’에 봉사하는 모든 학문들”이며, “그것들은 마치 혈연으로 연결된 것처럼 서로 공통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인문학’(humanitas)이란 말은 여기서 처음 등장했다고 전해온다. 애초 인문학은 밝고 빛나는 ‘신의 선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쓸모없는 것’이라며 공동체 바깥으로 추방을 명령하는 권력에 맞서 스스로 존재 이유를 발굴하고 공동체 속에 있어야 할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10년 동안 인문학 진흥을 위해 시행됐던 ‘인문한국’(HK) 사업이 종료를 앞두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교육부가 후속 사업인 ‘인문한국 플러스’ 사업에 기존 ‘인문한국’ 연구소들의 참여를 배제하자,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 소속 인문학자 539명이 “그동안 축적한 연구기반을 무너뜨린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애초 ‘인문한국’ 사업이 시작될 수 있었던 배경에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는 인문학자들의 절박한 일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과연 ‘인문학의 권리’를 제대로 돌볼 수 있을 것인지, 우리 공동체가 또다른 시험대 위에 섰다.
최원형 책지성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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