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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언어의 빈자리 / 손아람

등록 2017-08-30 19:17수정 2017-08-30 19:59

손아람
작가

“뭐라고 부르지? 그게 처음 떠오른 질문이다. 후보님? 대통령 선거는 끝났다. 대표님? 무소속이다. 의원님? 의석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어제까지 차기 대통령직의 지분을 도합 0.5퍼센트 가지고 있던 정치인을 이름 뒤에 씨자 붙여 부르기는 좀 미안하다. … 표류하는 건 직함이 아니라 진보정치 그 자체가 아닐까.”

201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무소속 김순자 후보를 인터뷰한 기사의 첫 단락이다. 기사는 한겨레신문사에서 내던 월간지 <나·들>에 실렸다. 기사에는 쓰지 않았지만 나는 인터뷰 내내 김순자‘씨’를 ‘후보님’이라 불렀다. 재투표를 확신하는 극성 지지자처럼. 존칭과 멸칭의 뉘앙스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므로 유동적이다. 나는 ‘씨’가 발생적 근거로 존칭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양반’도 존칭이다. 2001년 방미한 김대중 대통령을 부시 대통령은 ‘디스 맨’(this man)이라 불렀고 국내 언론은 이것을 ‘이 양반’으로 번역하며 외교적 결례를 지적한 바가 있다. ‘이 사람’이 더 정직한 번역이지만 ‘이 양반’만큼 무례하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씨’냐 ‘여사’냐. 대통령 부인 호칭을 둘러싼 논쟁 이면에는 모든 사회적 지위에는 격에 맞는 직함이 따라야 한다는 집단 무의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직위를 억지로 가공하는 호칭인 ‘여사’는 결코 존칭이 될 수 없다. 독립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된 사람을 누군가의 배우자인 정체성에 묶어두는 호칭은, 어떤 선의에도 불구하고 멸칭일 수밖에 없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중국)과 2020년 올림픽 개최국(일본) 정가운데 위치한 나라’는 대한민국을 높여 부르는 말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영어권 국가의 ‘퍼스트레이디’는 한 나라의 첫 번째 여성이고 대한민국의 ‘여사’는 대통령부터 마을 로타리클럽 회장까지 다양한 권력을 가진 수많은 남성의 아내 중 한 명이다. 얼마나 다른가. 언어는 그 자체로 사회적 무의식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라고 반박해봐야 소용없다. 무의식은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까. 대통령 부인 호칭 결정을 위해 <한겨레>가 주최한 좌담회에서도 성차별 논점이 공유됐지만, 권력을 가진 여성을 호명하는 더 관용적인 방식을 찾지 못했다. 바로 그 언어의 빈자리 역시 사회적 무의식의 빈자리다.

시민의 호칭을 ‘씨’로 통일해왔던 <한겨레>의 언어 규범 역시 직함을 가진 자를 예외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을 문재인씨와 이순신씨로 부를 수 없는 한, 언어의 뉘앙스를 임의 규약으로 대체하고 계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환상이다. 언론사가 절독운동까지 거론하는 정치적 팬덤의 등쌀에 떠밀려 무릎 꿇는 인상을 주면서 내린 호칭 변경 결정이 논란이 됐지만, 그건 근본적인 쟁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로서 일개 언론사가 언어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은 없다.

다만 사회를 관찰하고 언어를 다루는 작가로서 나는 미래를 이렇게 예측한다. 정권이 여러 번 교체된 어느 날, 사람들은 새 대통령의 부인을 ‘여사’라 부르는 언론에 싫증과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시민들은 ‘여사’가 대통령 부인을 비하하는 멸칭이라 주장할 것이며, 언론사들은 올해 일어난 존칭 변경 사건을 거론하며 ‘여사’는 존칭이 맞다고 항변할 것이다. 분노한 새 대통령의 정치적 팬덤은 ‘여사’라는 호칭을 고집한다면 절독운동을 벌이겠다고 다시 한 번 으름장을 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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