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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산타 예산’ 공방이 놓친 것 / 황보연

등록 2017-09-10 18:15수정 2017-10-08 06:14

황보연
정책금융팀장

국회로 간 문재인 정부 첫 예산안을 두고 정치권에선 전혀 상반된 두 가지 기류가 흘렀다. 하나는 ‘산타클로스’ 예산이라는 비판이다. 내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0% 줄고 복지 예산은 두 자릿수 증가율(12.9%)을 보인 것이 빌미가 됐다. 자유한국당은 ‘현금살포형 분배 예산’ ‘인기관리용 포퓰리즘 예산’이라며 국회에서 칼질을 벼른다. 국민의당도 ‘(정부가 밝힌 재원 소요로는)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다 구입할 수 없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다른 하나는 ‘산타클로스 예산이 되기엔 부족하다’는 정반대 평가다. 정의당은 “일부 복지확대를 환영하지만 대선 공약보다 후퇴하는 등 복지사회로 나아가기엔 미흡하다”며 국회에서 추가적 예산 반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시계를 약간만 돌려보면, 5·9 대선을 계기로 복지확충에 대한 공감대는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진보·보수 후보 구분 없이 아동수당 도입과 기초연금 인상,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약속해,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각론 차원에서의 ‘입법 전쟁’만 남았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였다. 한껏 달아올랐던 복지공약 경쟁은 일면 ‘포퓰리즘 경쟁’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가 누구도 거스르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음을 입증한 의미가 더 컸다.

이런 맥락에서, 이른바 ‘산타 예산 공방’이 자칫 소모적 정쟁에 치우치지 않으려면 좀 더 근원적인 질문에 치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복지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릴지에 대한 비전과 로드맵이 안 보인다는 의문이 그것이다. 보수정부 9년에 견줘 확장적 재정지출에 나선 것만으로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기엔 갈 길이 멀다.

하다못해 정부는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견준 복지지출 수준(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을 임기 내 얼마나 늘릴지에 대한 목표치조차 제시한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복지지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인 10.4%에 그친다. 이 비중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임기 중 3.6%포인트 올랐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3.3%포인트 높아졌다. 기획재정부 고위 간부는 지난 7월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있고 나서야 “지금보다 2~3%포인트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지만, 공적연금 지출 등 고령화에 따른 자연증가분을 고려하면 상승폭이 크다고 보긴 어렵다.

재정을 어디에 얼마나 더 써야 하는지에 대한 로드맵이 없으면 ‘각론’도 지향점을 잃기 쉽다. 한 예로,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선 아동수당을 월 10만원에서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했지만, 집권 뒤엔 ‘단계적’이란 문구를 삭제했다. 아동수당의 지급 범위와 수준을 중장기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청년에 대한 구직수당이나 노인빈곤 문제 완화를 위한 기초연금 인상 등 다른 복지과제에 견준 우선순위도 매겨진 적이 없다 보니 ‘공약 후퇴’가 되더라도 마땅한 정부 해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물려준 넉넉한 곳간(세수)에 힘입어, 현 수준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복지확대에 그치는 모양새다. 국민의 세 부담 수준을 나타내는 조세부담률 전망치도 임기 내 19%대를 벗어나지 않아 거의 제자리 수준이다. 청와대에 ‘재정기획관’ 자리까지 신설하는 의지를 보였던 정부의 첫 예산안에서 ‘담대함’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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