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영세민 부부의 어린 남매가 집을 보다 불이 나 숨진 사건을 보도한 1990년 3월 당시 〈한겨레신문〉기사.
1990년대 초반 대학가에서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란 노래가 종종 불렸다. 1990년 3월9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연립주택 지하 셋방에 불이 나 5살 혜영양, 3살 영철군이 숨진 사건이 배경이다. 가족은 시골에서 2년 전 상경했다. 경비원 아빠(30)와 파출부 엄마(28)는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면서 ‘부엌칼과 연탄불에 아이들 다칠까봐’ 밥과 요강을 들여놓고, 문밖에 자물쇠를 채웠다. 인근에 어린이집이 있었지만, 오후 5시까지만 맡아줘 도움이 안 됐다. 또 아이 한 명당 월 5만원, 부부 수입은 월 65만원. 불은 아침 8시50분께 일어났고, 전세 400만원짜리 3평 단칸방을 다 태웠다. 방문을 열었을 때, 누나는 엎드린 채, 동생은 옷가지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방문에는 옅은 손톱 자국이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은 상당한 사회적 주목을 받았고, 시민들이 부부에게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 뒤 4월18일 서울 암사동 상가건물 1층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던 3살 여자아이가 집에 혼자 있다 불이 나 숨지는 등 비슷한 사건은 이어졌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05년 10월11일 서울 서초구 원지동 개나리마을 비닐하우스 셋집에서 밤늦게 불이 나 6살, 4살 형제가 숨졌다. 부모 이혼 뒤 엄마(35)와 살던 아이들은 제빵공장에서 밤샘 작업 하는 엄마를 기다리다 변을 당했다.
다시 12년이 지난 8일 서울 구로구 개봉동 다가구주택 1층에서 불이 나 혼자 있던 조아무개(7)군이 숨졌다. 추석 연휴, 베트남 출신 어머니는 일터로 출근했고, 택배일 하는 아버지는 잠시 바깥에 나간 사이 불이 났다.
1990년 정태춘의 노랫말이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에 어린 우리 둘이서…”
2017년 신문 기사 제목이다. “혼자 집 보던 7살 아이, …”
권태호 논설위원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