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받아들인 것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에 말려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치광이 전략은 상대방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미치광이처럼 보이게 해 공포감을 유발한 뒤 협상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다. 트럼프가 지난달 초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이 전략을 쓰라고 지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미국 온라인매체 <액시오스>의 1일 보도를 보면, 트럼프가 “당신에게 30일을 주겠다. 그 안에 (한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면 난 (한-미 FTA에서) 빠지겠다”고 말하자, 라이트하이저는 “알겠다. 한국에 30일 동안 시간을 주겠다고 전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협상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30일을 주겠다고 하지 말고 ‘대통령이 제정신이 아니라서(This guy’s so crazy) 지금 당장이라도 한-미 FTA를 폐기할 수 있다’고 말해라”라고 지시했다.
트럼프의 언행은 미치광이 전략의 ‘원조’ 격인 닉슨을 연상시킨다. 닉슨은 베트남전쟁 때인 1969년 해외 주둔 미군에게 ‘핵전쟁 경계령’을 내렸다. 또 자신이 공산주의에 대한 강박감 때문에 항상 핵 버튼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최근 열린 한 국제문제 포럼에서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과거 소련의 협상 파트너들에게 ‘지금 대통령이 스트레스가 많다. 그가 밤에 종종 술을 마신다. 당신들 정말 조심하는 게 좋다’고 경고하는 등 미치광이 전략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북베트남과 소련이 위협을 느껴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북베트남이 미국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치광이 전략의 본질은 미친 게 아니라 미친 척해 협상에서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트럼프의 협상술을 너무 쉽게 받아주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앞으로도 협상 과정에서 수틀리면 또다시 ‘한-미 FTA 폐기 카드’를 꺼내들 것이다. 미치광이 전략에 더이상 휘둘리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우리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미 의회와 산업계에서도 “폐기 반대” 목소리가 높다. 다음달로 예정된 트럼프의 한국 방문 기간에 한-미 통상장관 회담이 다시 열린다. 미치광이 전략에 대한 두려움부터 떨쳐버려야 한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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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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