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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 조혜정

등록 2017-10-15 18:23수정 2017-10-15 19:08

조혜정
대중문화팀장

“젊은 사람이 긍정적으로 좀 생각해야지. 회사가 그런다고 똑같이 하면 쓰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던 2007년 5월10일 아침이었다. 출마 기자회견은 서울 염창동에 있던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미리 이 전 대통령과 캠프 분위기를 좀 살펴보려고 안국동에 있던 그의 사무실 ‘안국포럼’에 들른 길이었다. 이 전 대통령 일행이 엘리베이터를 타길래 얼른 따라 탔다. 마침이랄까, 하필이랄까, 기자가 나 혼자였다. 출마 선언의 메시지로 뭘 준비했는지 물으려는데 이 전 대통령이 선수를 쳤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당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규칙을 둘러싼 이 전 대통령 쪽과 박근혜 전 대통령 쪽의 싸움으로 당 안팎이 매우 시끄러웠다. <한겨레>도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곤 했었다. 그걸 이 전 대통령은 ‘부정적인 생각’이라 여겼던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발언에 당황해서 뭐라고 대꾸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대통령 되면 우리 회사 문 닫게 할 기세’라는 느낌이 강하게 남았다.

느낌이 어느 정도 맞았다고 해야 할까. 이명박 정부는 <한겨레21> 편집장을 불법사찰하고 <한겨레>에 정부부처 광고 집행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정도로 회사가 문을 닫진 않았다. 뜻밖의 폭탄을 맞은 건 방송사들이었다. ‘방통대군’으로 불렸던 최시중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을 중심으로 ‘길들이기’와 ‘찍어내기’가 착착 진행됐다. 사장 ‘낙하산’이 떨어졌고,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와 피디들이 쫓겨났다. 정부에 편향됐거나 받아쓰기 보도,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보도를 보는 게 어렵지 않게 됐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뉴스를 안 보게 됐고, 내가 아는 어떤 선배는 ‘아들이 커서 엄마가 공영방송 기자라는 걸 알고, 그때 왜 그러셨냐고 할까 봐 무섭고 부끄럽다’며 회사를 관뒀다. 문을 닫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방송사들이 엉망진창이 된 거다.

신문방송학과를 나왔지만 공부보다 노는 걸 더 좋아해서 그런지 나는 언론이 입법·행정·사법부에 이어 제4부라는 말이 늘 이상했다. 공익에 복무할 사람을 가리는 공적인 절차를 통과하거나 자격증을 얻은 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근거로 기자가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명박 정부를 겪고 박근혜 정부를 견디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폭주하는 권력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국민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는 언론을 통제하는 것임을. 언론을 제4부로 부르든 말든,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한다고 자임하든 말든, 언론이 본연의 기능인 사실 확인과 검증, 권력 감시와 비판을 하지 못하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것을.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며 두 공영방송 직원들이 파업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다 돼간다. 하지만 싸움은 쉽게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경영진과 이사회는 버티기로 일관하고,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언론 장악’이라고 억지를 쓴다. 그 탓에, 지난 13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초점은 대부분 파업 해결책과 방송 정상화 해법이 아니라 ‘여야 공방’이었다. 공영방송 파괴를 시작했던 이 전 대통령은 얼마 전 페이스북에 “안보가 엄중하고 민생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든 시기에 전전 정부를 둘러싸고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퇴행적 시도는 국익을 해칠 뿐 아니라 결국 성공하지도 못합니다”라고 썼다.

이 전 대통령이 나한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연세도 있으신데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자유한국당이 그런다고 똑같이 그러시면 되나요.”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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