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대학의 민주화를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과 비전임교원법 입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교육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세월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해오면서 한국의 대학 교육과 학문을 사실상 망쳤다. 지난 다섯 달 동안 문재인 정부가 유난히 강조한 국정과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적폐 청산일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국방부 등 과거 권력 남용을 일삼던 부처에서 적폐청산 대책본부나 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여당도 적폐청산위원회를 가동해 정부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적폐가 쌓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곳도 있다. 교육, 그중에서도 대학 부문이 대표적이다. 대학은 무엇보다 교육과 학문의 산실이지만, 민주주의의 산실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최고 수준의 교육과 학문도 만인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학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대학에서 민주주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대학의 민주주의는 대학 안팎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대학은 외부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은 사학재단과 교육부 때문에 숨도 쉬지 못하는 형편이다. 사학재단은 교수 임용과 총장 선출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교육부의 경우 각종 정책으로 압박해 대학을 슬슬 기게 만든다. 지금처럼 교육부와 사학재단이 대학과 관련된 주요 권력과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한, 한국의 대학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민주주의는 대학 내부에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은 최고 지성의 전당이라기에는 너무나 비민주적이다. 전임교수와 비전임교수, 전임교수 가운데서도 원로와 소장, 비전임교수 가운데서도 시간강사와 다른 비전임교수, 그리고 교수와 직원, 교수와 학생, 교수와 조교, 직원과 조교, 직원과 학생, 학생과 조교, 학생과 학생 사이에 상상하기 어려운 비민주적 위계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위계 관계가 지속된다면, 사학재단과 교육부로부터 자율성을 쟁취한다고 해도 대학 내부에 민주주의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시급한 것은 대학이 외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조치가 필수적이다. 2011년에 통과됐으나 문제가 너무 많아 세 차례나 시행이 유예된 강사법은 폐기해야 한다. 그 대신 강사를 포함한 12만명 비전임교원 전체의 신분을 보장하는 대체 법안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교수의 신분이 보장되어야만 대학의 내부 민주주의도 작동할 수 있다. 계속 문제를 일으켜온 사립학교법 역시 민주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사립대학이 전체의 80퍼센트가 넘는데 사학재단의 전횡을 막을 법적 장치가 없으면 대학 민주주의가 실현될 전망은 요원하다. 그러나 대학의 민주화를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과 비전임교원법 입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교육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세월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해오면서 한국의 대학 교육과 학문을 사실상 망쳤다. 최근에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 구성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강행해온 ‘1기 대학구조개혁 평가’ 정책에 대해 설문에 응한 교수 511명 가운데 75퍼센트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도 교육부는 2기 평가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하고 있다. 교육부의 적폐는 쌓여도 너무 많이 쌓였다. 사학재단의 전횡을 방치한 것도 교육부요, 강사를 포함한 비전임교원의 신분을 악화시킨 것도 교육부다. 대학 구성원 간에 비민주적 위계질서가 강화된 것도 따지고 보면 교육부 정책의 결과다. 대학들더러 당장 성과를 낼 것을 요구하는 정책들을 계속 강행해 대학 내부에 극악한 착취와 억압 구조가 형성되도록 한 것이 교육부인 것이다. 이 결과 한국의 대학은 학문과 교육의 전당이라기에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갖게 되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부 적폐 청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점이 의문이다. 지금 교육부의 김상곤 장관은 대학 민주화를 기치로 내건 교수운동단체인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의 핵심 활동가 출신이다. 그런 교육부에서 적폐 청산 신호가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부 관료의 권력과 기득권이 그만큼 막강하다는 것? 정말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이 제 모습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겠다. 대학의 민주주의도 그만큼 요원하다. 대학의 현장은 그래서 지금처럼 계속 망가질 것인가? 대학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서려면, 대학의 학문과 교육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교육부의 적폐부터 먼저 청산되고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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