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이 결정될 공론화위 종합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안내책자를 들고 있는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제1차 석유파동 뒤인 1976년 미국 물리학자 에이머리 로빈스는 ‘에너지 전략-택하지 않은 길’이란 글에서 미국이 두 갈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분기점에 섰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여태껏 그래 왔듯 환경 재해의 위험을 감수하며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를 중앙집중형으로 공급하는 ‘경성 에너지 경로’이고, 하나는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소규모 분산형으로 공급하는 ‘연성 에너지 경로’다. 어떤 미래를 위해 지금 어떤 경로를 선택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춘 그의 접근법은 ‘백캐스팅’(backcasting)의 원조로 꼽힌다.
진보적 에너지 정책을 연구해온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시민이 참여하는 ‘대안 에너지 시나리오’를 고민해온 결과물을 담은 <시민 참여 에너지 시나리오>(이매진)를 최근 펴냈다. 여기서 제시하는 주된 방법론이 바로 백캐스팅이다. 우리는 그동안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산업 구조에 큰 변화가 없고, 가정과 상업 부문에서 에너지 소비가 계속 증가한다고 가정한 뒤 복잡한 수학적 모형을 만들어 20년 뒤의 에너지 수요를 예측”하는 ‘포캐스팅’(forecasting)에 익숙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하던 그대로’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끝없이 재생산됐다. 백캐스팅은 ‘바람직한 미래’를 먼저 구상하고 이를 달성한 방법을 고민하기 때문에 이런 폐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최근에는 백캐스팅에 ‘시민 참여’ 요소까지 결합하는 추세다. 영국의 틴들 연구소가 2050년까지 1990년대 대비 60%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탈탄소화’ 시나리오를 개발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참여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여부를 논의하는 공론화 활동에서 나타난 시민대표단의 뜨거운 열기 역시 우리 시민들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에 얼마나 목말랐는지 보여준다.
최원형 책지성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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