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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통계학자’ 나이팅게일의 한계 / 이근영

등록 2017-10-22 17:10수정 2017-10-22 19:23

“성스럽고 희생적인 여성, 야전병원의 참혹한 광경들 사이를 오가며 죽어가는 병사의 침상을 자애의 빛으로 신성하게 만드는 광명의 여인”으로 묘사되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1854년 10월21일 서른여덟명의 간호사를 이끌고 크림전쟁터로 떠났다. 당시 전장에서 영국의 의료체계는 완전히 와해돼 야전병원의 상태는 형편없었다. 나이팅게일이 맞닥뜨린 건 일반 병원의 두 배에 이르는 병영의 사망률이었다. 배경에는 한 세대 동안 근위기병대 본부에 앉아 철통같이 개혁을 저지해온 워털루 전쟁의 영웅 웰링턴이 있었다.

나이팅게일을 ‘백의의 천사’로 추앙하도록 만든 힘은 자비를 털어 병원의 위생상태를 개선한 일도, 여자라는 이유로 육군청에 들어가지 못하면서도 군 수뇌부와 맞서 싸운 뚝심도, 사경을 헤매는 중에도 개혁의 끈을 놓지 않은 헌신성도 아니었다. 그는 꼼꼼한 통계학자였다. 국방장관과 여왕을 설득해 지원을 이끌어낸 건 파이형 통계 도표였다. 그는 월별로 사망자 수와 원인을 도표로 표시했는데, 시계방향으로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아 ‘로즈 다이어그램’이라 불렀다. 신선한 공기 등 병원 환경의 개선만으로 사망률은 1년 새 42%에서 2%로 떨어졌다. 나이팅게일은 뒷날 왕립통계학회 첫 여성회원이 됐으며, 미국통계학회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됐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은 경험주의자였을 뿐 근저에 놓인 일반원리를 고민하는 과학자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환자들의 방은 통풍이 잘되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학설’은 황열병이 창궐하던 인도에서는 ‘아집’일 뿐이었다. 병영 의료 책임자가 된 나이팅게일은 인도 군의관들한테 병실 창문을 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의 명령은 모기가 전염병을 옮긴다는 원리를 잘 알고 있는 현지 의사들의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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