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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자서제질사돈방

등록 2017-10-24 17:09수정 2017-10-24 19:07

과거제도를 도입한 것은 중국 수나라의 첫 황제 문제다. 새 인재를 등용해 귀족 세력을 억제하고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체제를 꾸리자는 생각에서였다. 집안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실력 있는 사람을 관리로 등용하자는 취지를 살린 과거제는 북송 시대에 효과를 내 ‘사대부’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이 과거를 도입했는데, 고려 때는 응시 자격이 매우 제한됐다. 조선시대에 비로소 과거가 널리 인재를 등용하는 창구가 되었다.

그런데 조선 중기를 넘어서면서 공정성이 무너져갔다. 광해군 2년(1610년) 19명을 뽑은 별시의 부정 사건은 유명하다. 실록(11월3일)에 이렇게 쓰여 있다.

“채점관인 박승종은 자기 아들 자흥을 뽑고, 조탁은 자기 동생 길을 뽑고,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형의 아들 보와 형의 사위 박홍도를 뽑고, 이이첨은 사위의 아비 이창후와 이웃 친구 정준을 뽑았는데, 박자흥은 그의 사위였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아들 사위 동생 조카 사돈의 합격자 명단’(子壻弟姪査頓榜: 자서제질사돈방)이라고 했다.”

채점관들이 서로 짜고 친인척을 합격시키자 뒷말이 많았다. 책임은 고스란히 허균이 뒤집어썼다. 의금부에 잡혀가 매를 맞았다. 허균의 조카 허보와, 허균과 친밀한 환속 승려 출신 변헌의 합격은 취소됐다. 허균은 전라도 함열에 유배됐다. 벼슬하지 않고 시로 이름을 날리고 산 허균의 벗 권필은 “아들·사위·동생보다는 생질을 부정합격시킨 게 그래도 죄가 덜한데”라며, 허균 혼자 죄를 뒤집어쓴 사건 처리 결과에 사람들이 승복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합격이 취소된 허균의 조카는 더는 과거 시험을 보지 않았다. 자식들이 커서 대궐 앞에 나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려 하자 사람을 보내 막았다. 강원랜드 부정채용 건을 보면 지금은 그런 염치조차 다 사라진 것 같다. 그저 ‘개판’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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