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사무장, 전 부장판사 수능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수험생으로서는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해야 할 때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시험 보는 요령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요령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하는 조언이 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일단 미루어 두고, 쉬운 문제부터 먼저 풀라’고 한다.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다가 시간이 모자라면 쉬운 문제조차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 배분에 실패해서 시험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돈을 상납받은 일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물론 불법이다. 뇌물수수, 국고손실뿐만 아니라 다른 혐의도 추가될 수 있다. 액수가 많다 보니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는 중한 범죄이다. 이런 중범죄를 저질렀으니 마땅히 범법행위를 털어놓고 국민께 사죄를 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를 배출한 자유한국당은 반성 이전에 항변을 하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역대 정권마다 다 해왔던 것”이라며 “그것을 지난 정부에만 맞춰 청와대가 뇌물을 받은 것처럼 표현하는 것에 분개한다”고 했다. 주광덕 국회의원은 “발본색원하려면 역대 정부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종합하면 ‘모두 다 돈을 받았으니 다 조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정권에 대한 언급은 차치하고, 박근혜 정권이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자백’에 해당한다. 범죄행위를 부인하지 않고 이를 인정하고 있으니 이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면 다른 정권은 어떠했을까? 이에 대해 국민의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역임한 박지원 의원이나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는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즉, 자유한국당 측은 범법행위가 예전부터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행위자로 지목된 쪽은 그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일반적인 ‘증명책임의 법리’에 따르면 ‘어떠한 사실이 있다’라는 주장을 한 쪽에서 그러한 사실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자유한국당 측은 아직까지 그 증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을 풀어가는 것이 좋을까? 당연히 자백을 하고 있는 범죄행위를 먼저 조사해야 한다. 범죄를 자백하고 있는 이상 진실을 밝히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반면에 주장하는 쪽에서 증거도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사실이 실제 존재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좀더 쉬운 것, 좀더 명백한 것을 먼저 하는 것이 순리다. 어려운 일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다. 어려운 것을 먼저 하거나, 쉬운 일과 함께 했다가는 전체를 그르칠 수 있다. 시험이나 진실규명이나 다를 것이 없다. 또한 자유한국당은 다른 정권 탓을 하기 전에 자신들이 만든 정권에서 국민의 세금을 유용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구하는 것이 순서다. 자백을 하고는 있으나, 역대 정권까지 함께 언급하고 있는 이상, 그것을 가리켜 ‘진실한 사죄’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게다가 증거도 없이 주장만 하고 있으니, 반성 있는 자백이라 하기도 어렵다. 사죄뿐만 아니라 범법자를 배출한 책임도 져야 한다. 국민의 소중한 피땀이 어린 돈을 착복했으니,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당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수험생, 자유한국당 모두 순서를 지켜 일을 잘 풀어나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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