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바른정당 의원 18명이 모인 만찬 자리에서 김무성·유승민 의원이 당 화합을 강조하며 입맞춤을 하고 있다.
김무성 의원은 ‘상도동계’ 막내다. 32살 김무성은 1983년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간 이후 줄곧 그를 따랐다. ‘와이에스(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임하는 그는 2015년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오열하며 상주 노릇을 자처해 빈소를 지켰다. 선이 굵고, 모질지 못해 사람을 잘 내치지 못하고,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별명 등 일견 와이에스와 비슷한 점도 많다.
김무성의 큰 자랑거리는 1980년대 와이에스와 함께 한 민주화 투쟁이다. 2013년 5·18 기념식을 앞두고 박근혜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배제하자, 새누리당 인사로는 처음으로 “나도 민주화 투쟁 시절 하루 몇 번씩 불렀다. 뭐가 문제냐”고 했고, 기념식에서 친박계 의원들이 굳게 입 다물고 있을 때 소리 높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와이에스는 1987년 당시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전두환 정권이 주장하는 내각제 개헌 구상을 발표하자, 디제이(DJ)와 함께 탈당해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을 했다. 김무성은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뒤, ‘새 보수정당’을 만들겠다며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그러더니 1년이 안 된 8일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복당’한다.
김무성은 2012년 10월 새누리당 대선 선대위 회의에서 불쑥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가, 박근혜 후보 공약과 배치돼 논란을 빚자 “개인 의견”이라며 거둬들였다. 그해 대선 선대위 총괄본부장 임명 직후에는 당직자 200명에게 “내가 1인당 10만원씩 줄 테니 맛있는 거 사먹으라. 그리고 열심히 일하자”고 해 열화 같은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이게 선거법 위반이었다. 그래서 없던 일이 됐다. 바른정당 창당도 ‘사견’이고, ‘10만원’짜리였던가. 김영삼은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김무성은 새벽을 기다리나, ‘닭 모가지’를 비트나.
권태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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