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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모두를 위한 공무원 충원 예산 / 이원희

등록 2017-11-13 17:54수정 2017-11-13 18:56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말은 시대를 반영한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입도선매(立稻先賣)란 단어가 요즘 부쩍 눈에 띄는 것도 그렇다. 일본의 취업 사정을 전하는 뉴스에서다. 입도선매는 농산물을 수확 전에 미리 사고파는 것을 일컫는데, 기업이 졸업 예정자를 미리 확보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일본 대졸 예정자 80% 입도선매”라는 뉴스가 부럽다.

우리나라 취업시장에서도 입도선매가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를 비롯한 베이비붐 세대가 그랬다. 대졸이든 고졸이든 대부분 졸업 전에 취업이 확정됐다. 따라서 졸업, 취업, 결혼, 출산은 우리 기성세대에서는 누구나 거치는 평범한 인생 경로였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첫번째 관문인 취업에 좌절하니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힘들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에코세대(1991~96년생)가 본격적으로 취업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더 나빠질 조짐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니 숫자는 많은데, 일자리가 옛날만큼 생기지 않는 탓이다. 지난 9월 기준으로 청년 실업률은 9.2%, 체감 실업률은 21.5%나 된다. 더구나 이들은 인공지능이나 로봇과 일자리를 두고 다투어야 하는 첫 세대다. 시간이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대로 두면 우리 사회는 한 세대의 ‘집단적 낙오’를 목격할지도 모른다. 이는 국가 전체의 부양력을 떨어뜨려 기성세대의 노후도 어렵게 만들 것이다. 두렵다. “일자리는 시장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은 백번 맞지만, 정부가 혁신성장에 나섰다고 해서 기업의 일자리 사정이 금세 표나게 좋아질 리 없다. 근본적 처방을 마련하는 것과 별개로, 당장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셈이다. 공공부문을 통해 그들을 부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침 국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경찰관, 소방관, 특수교사, 근로감독관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 법정 인력에도 못 미친다. 복지 및 행정 수요는 크게 늘었는데도 그동안 공무원 수를 엄격하게 통제한 탓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정부 취업자 비중은 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8.1%의 절반도 안 된다. 그렇다 보니 심정지 환자를 구하러 간 응급차에도 응급조치 인력이 없고, 전문상담교사 1명이 8개 학교를 맡고, 피해자가 2700명인 사기 사건을 경찰 1명이 수사하는 일이 빚어진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공무원 충원 예산을 담았다. 청년 취업난을 조금이라도 덜면서, 그렇게 뽑은 인력으로 파출소가 정원을 확보해 범죄를 줄이고, 119 구급대원을 늘려 골든타임 안에 환자를 구하고, 사회복지 공무원을 늘려 노인과 장애인의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것이다. 물론 “공무원을 많이 뽑으면 미래의 재정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경제성장으로 정부 수입도 함께 늘어나서 정부 지출에서 공무원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일정한 비율 내에서 관리가 가능하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퇴직 인력의 수 또한 이전보다 증가한다는 점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고용된 청년들의 소득은 소비를 통해 경제의 선순환을 돕는 역할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공무원 충원 예산안을 둘러싼 논쟁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비용과 편익을 저울로 달아 보일 수 없어 안타깝고 답답하다. 하지만 에코세대의 취업난 완화가 가져올 사회통합, 국민이 받을 공공서비스 체감도, 안전이 가져올 국가경쟁력 등을 감안하면 이런 예산이야말로 요즘말로 ‘가성비’ 높은 투자다. 또한, 저출산·고령화가 상수가 된 지금, 청년은 경제발전에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다. 청년을 뽑아 귀하게 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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