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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총과 카메라 / 이라영

등록 2017-11-22 18:15수정 2017-11-26 13:44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최근 미국 뉴스의 가장 큰 이슈는 크게 두 종류다. 총기 사건과 성폭력. 모두 자국 내 백인 남성에 의해 저질러지는 사건이다.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 이어 배우 케빈 스페이시, 앨라배마 선거에 나온 로이 무어, 코미디언 루이스 시 케이(C. K.) 등의 성폭력이 줄줄이 폭로되었다. 유명한 남성들은 자신의 아랫도리를 이용해 여성과 미성년자들에게 권력을 확인하고, ‘평범한’ 남성들은 총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대부분의 총기 사건 용의자들은 가정폭력과 관련 있다.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폭력 피해자로 소리 지를 때는 사소한 문제로 여기다가 집 밖으로 그 폭력이 넘쳐흐르면 뒤늦게 그 관련성을 ‘발견’한다. 여자가 집 안에서 죽을 때는 ‘사적인’ 일이다.

‘몰래카메라’라는 디지털 성폭력에 정신이 팔린 현재 한국 남성들은 카메라로 여성들을 찍는다. 대상을 포착하여 총을 쏘거나 카메라로 찍는 행위에는 공통점이 있다. 슛(shoot)이라는 단어는 총을 ‘쏘다’와 사진을 ‘찍다’라는 뜻을 모두 가진다. 수전 손택의 지적대로, “카메라와 총, 그러니까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인간을 쏘는 총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는 곧 사진을 찍는 행위인 것이다.”

총기 소유는 불법이니 한국 남성들은 여성에게 총을 쏘진 않지만 활을 쏘고, 정액을 뿌리고, 잉크를 뿌리며 남성권력을 과시한다. 이때 활, 잉크는 성기가 연장된 도구이다. 나아가 각종 소형 카메라와 드론까지 동원해 확장된 시선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이 ‘쏘고 찍는’ 행동에는 반드시 대상을 향한 권력이 가득한 응시가 있기 마련이다. 여성은 피사체, 극단적인 관음증의 대상이자 과녁이다.

교감이 여성 교사를 세워놓고 활을 쏘는 행위는 권력을 이용해 피해자의 두려움을 즐긴 명백한 폭력이다. 그까짓 잉크 좀 뿌리고, 그까짓 활 좀 쏘고, 그까짓 불법 촬영 좀 한다고 사람 안 죽으니 법은 이 폭력에 느슨하게 대처한다. 이렇게 수없이 일어나는 징후들을 거듭 외면하는 이유가 뭘까. 누군가의 성폭력을 범죄로 만들기에는 그 범죄에 그동안 동조했고 앞으로도 동조할 작정인 인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제도가, 시스템이 이 폭력사회의 공범이다.

몰래카메라도 실은 ‘몰래’ 찍히지 않는다. 카메라 이전에는 거울이 그 역할을 했다. 남학생들이 여성 교사의 치마 밑에 거울을 들이대는 폭력적 행동에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뭐’라고 쉽게 ‘이해’하던 평범한 어른들이 어디 한둘인가. 아무런 도구가 없다면 그저 여자의 치마를 손으로 들추면 된다. 남자아이들은 어릴 때 이렇게 ‘놀았다’.

때로 ‘허리 아래는 묻지 말자’는 말을 무슨 자유로운 정신인 양 허세를 부리며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사생활을 대단히 보호하는 듯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허리 아래’가 누구의 허리 아래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여성, 더 정확히는 비남성으로 분류되는 성별의 허리 아래는 온 사회가 캐묻고, 훔쳐보며 침범한다.

사람을 사물로 대하는 폭력성이 무엇인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그 눈들의 권력이 기형적으로 뻗어나갈 때, ‘본다는 것’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폭력적 권력 남용과 추잡스러움을 향한 질주만 남는다. 간호사들에게 ‘장기자랑’을 시키고 바라보는 그 수많은 눈들처럼. 낄낄거림이 묻어나는 그 생명력 없는 눈, 정의로운 촛불도 태우지 못한 그 관음증의 눈, 총이 되어버린 눈이 증식하고 있다. 피사체들은 말해야 하고, 과녁들은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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