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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당장은 곶감이 달다 / 박병수

등록 2017-11-26 17:39수정 2017-11-26 19:14

박병수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말 국회에서 ‘3불 정책’을 거론하며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논란이 됐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며칠 뒤 같은 취지의 발언으로 강 장관을 거들었다. 한·미는 동맹이지만 한·일은 동맹이 될 수 없으니, 한·미·일 3국 간 동맹은 없다는 뜻이었다. 이는 과거 정권과 다르지 않은 입장이니 새로울 것도 없다. 국내 반일 정서의 뿌리가 깊고, 한·일 간 동맹 관계가 되기 어렵다는 사실도 변한 게 없다.

그러나 한·일 관계가 그냥 그렇게 간단히 정리될 수 있을진 모르겠다. 10여년 전만 해도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랄 게 없었다. 한반도 안보는 한·미 동맹의 일이었고, 일본이 군사적으로 끼어들 일은 없었다. 1990년대 중·후반 김영삼 정부 시절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해 한반도 평화체제 등을 논의하는 4자회담이 열렸을 때 일본은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일본은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의 당당한 한 축이 돼 있다. 몇 년 전부터 한·미·일 3국 간 각종 대화틀이 정상 수준에서 실무급까지 다양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6월부턴 3국 간 미사일경보훈련 등 군사협력도 본격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본의 역할 확대 흐름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징후는 없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첫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한·미·일 3국 협력을 증진시켜 나가겠다”고 다짐했고, 11월 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문에선 “일본과의 3국 간 안보 협력을 진전시켜 나간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한·미 정상회담 문건에 한·미·일 3자 협력이 명기된 건 과거 정부에선 없던 일이다. 문 대통령이 한·미 양자회담 문건에 제3자인 일본과의 협력을 적어넣는 첫 선례를 별 거리낌 없이 만든 것은, 그만큼 일본의 존재가 자연스러워졌다는 뜻으로 들린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한·일 정상이 전화 통화로 공동 대응을 협의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미국 대통령하고만 통화했다. 한·일 국방장관 간 ‘미사일’ 통화도 최근 시작된 일이다. 지난 3월 북한의 미사일 ‘스커드-ER’ 4발 발사 직후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이 이나다 도모미 당시 방위상과 전화로 “단호한 대응” 을 논의한 게 처음이다.

정부 내 정책담당자들 사이에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사실 언제까지나 과거사에만 얽매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이 대북 억제에만 머무는 외눈박이일 필요는 없다. 주변 정세는 전환기이다. 중국은 이미 G2의 강대국이 됐다. 이에 맞서 일본은 미국의 후원 아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합법화했고, 이젠 헌법 개정으로 군사적 제약을 완전히 벗어버리려 한다. 우리가 북한의 위협을 의식할 때 일본은 중국을 겨냥한다. 당장 우리에겐 일본의 중국 견제에 동조할 이유가 없다. 한·일 간 안보이익엔 간극이 있다.

정부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아직 있다. 한·일 군사협력은 미국 주도의 한·미·일 3자 협력의 틀로 진행되며, 분야도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1945년 8월 패망과 함께 물러간 일본이 시나브로 안보협력을 매개로 다시 역할을 확대해온 과정을 시야에 넣고 보면,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도대체 우리는 일본을 어디까지 더 허용해야 하는 걸까.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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