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歸順)이란 ‘적이었던 사람이 반항심을 버리고 스스로 돌아서서 복종하거나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오래전부터 쓰인 한자말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 신문을 보면 대한군정서 김좌진 총사령관이 자신의 귀순설에 대해 “허무맹랑한 풍설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을 도저히 용서하기 어려워 곧 상당한 방법으로 처리한다고 선언하였다더라”(동아일보, 1923년 4월21일치)라는 기사가 보인다.
해방 뒤에는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실향민과 귀순자로 구분해 썼다. 공식 첫 귀순자는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2월15일 월남한 당시 스물한살의 홍순원씨로 기록돼 있다. 홍씨는 귀순용사 친목회 회장을 지내다가, 1980년에 설립돼 탈북자라면 누구나 가입해야 했던 사단법인 숭의동지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정부는 전쟁이 끝난 뒤 아직 산속에 있던 빨치산들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귀순증’을 인쇄해 뿌렸다. ‘귀순한 의약업자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에서 보듯 귀순은 법률 명칭에도 그대로 쓰였다. 국경을 넘어, 또는 제3국을 통해 북한에서 남한으로 오는 사람을 공식적으로 ‘탈북자’라고 한 것은 1997년 제정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북한에 주소·직계가족·배우자·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을 벗어난 뒤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지난 13일 북한 병사 오아무개씨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남쪽으로 넘어왔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심한 총상을 입고 어려운 수술을 거쳐 회생하는 동안 큰 관심을 끌었다. 오씨의 일을 대부분의 언론이 귀순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군인이라서 항복해왔음을 더 강조하려 한 것인지 모르나, 탈북보다 더 적합한 표현인지 의문이 든다. 2004년 이후 설립된 탈북자 단체는 모두 44개인데, 단체 이름에 ‘귀순’이란 표현을 쓰는 곳은 하나도 없다.
정남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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