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미국의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가 주도한 ‘제정신을 차리기 위한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내가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더라도, 당신이 히틀러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출처 플리커
미국 사회학자 고든 고샤는 2012년 발표한 논문에서 “1974~2010년 미국 보수당원이 과학적 사실을 믿는 정치집단에서 과학을 신뢰하지 않는 집단으로 바뀌었다”고, 더 정확히 말하면 “고등교육을 받은 보수주의자의 비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스켑틱> 한국어판 11호)고 지적했다. 레이건 시대 이후 이른바 ‘뉴라이트’가, 과학과 정면충돌했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이 기간의 끝 무렵, 9·11 테러를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믿는 ‘트루서’, 오바마가 미국 태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버서’, 진화론과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이들 등 각종 음모론이 보수주의를 휩쓸었다. 미디어를 꿰찬 입심 좋은 ‘공격수’들은 이를 끝없이 재생산했다.
이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돼지와 씨름하지 말라. 더러워질 뿐 아니라 돼지가 좋아한다”는 말처럼, 합리적 토론은 기대하기 어렵다. 감정과 직관에 호소하는 보수주의와 달리, 진보주의 가치는 단순하고 강렬한 메시지만으로 전파되지 않는다. 거짓도 끊임없이 떠들면 끝내 먹힌다는 ‘토킹 포인트’ 전략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지프 히스의 책 <계몽주의 2.0>은 결국 코미디언들이 나서서 우파 선동가들을 상대하게 된 현상을 지적한다. ‘데일리쇼’의 진행자 존 스튜어트, 스티븐 콜베어, 저닌 거로펄로 등은 우파 선동가들의 주장 속 터무니없는 대목들을 짚어내고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돼지와 싸우는 일은 코미디언에게 맡기면 된다.”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리면, 자못 심란해진다.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은 공영방송에 “우리 말고 대통령을 조롱하라”는 ‘드립’을 치고, ‘블랙리스트’에 올리거나 고소하는 등 코미디언들과 싸우는 데 이골이 난 이들 아닌가. 과학적 사실도, 합리적 토론도, 변칙 코미디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이들 앞에서 아까운 시간만 흘러간다.
최원형 책지성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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