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인들이 지난달 밸푸어 선언 100년을 맞아 영국에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예루살렘/EPA 연합뉴스
2013년 숨진 미국의 인기 작가 톰 클랜시의 소설 <썸 오브 올 피어스>(1991)는 벤 애플렉과 모건 프리먼이 나온 영화(2002)로도 유명하다. 영화와 달리 원작에선 반이스라엘 성향의 무슬림 강경파가 핵무기 탈취 세력으로 등장하는데, 주인공 잭 라이언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소유를 포기하고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 세 종교의 대표자가 공동관리하는 중립지대로 만드는 평화협상을 막후에서 이끈다. 현실 속 바티칸처럼 경비는 스위스 근위대가 맡게 했다. 1947년 예루살렘의 지위를 ‘코르푸스 세파라툼’(Corpus Separatum)으로 규정했던 유엔결의안 181호에서 가져온 설정이라 볼 수 있다.
코르푸스 세파라툼. ‘분리된 몸체’를 뜻하는 라틴어다. 영국이 철수하기 전, 유엔은 팔레스타인 땅을 아랍인과 유대인의 국가로 분할하되, 세 종교 모두가 양보할 수 없는 성지로 여기는 예루살렘은 유엔을 대신해 신탁통치위원회가 통치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예루살렘을 국제법상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한 국제체제로 분리해낸다는 이 구상엔 사실 성지 통치권을 무슬림에게 주지 않겠다는 서구 열강의 의도가 짙었다. 영토 분할 비율도 팔레스타인 쪽에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그나마도 실행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그 이듬해 건국을 선포하고 1차 중동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영토 78%와 서예루살렘을 차지했다. 1967년 6일전쟁 이후엔 가자와 서안지구, 동예루살렘까지 군사적으로 점령했다. 유엔은 그해 결의안 242호를 통과시켜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점령이 불법임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어이 이제까지 모든 국제사회 결의를 부정하고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미국식 영웅주의를 그려왔던 전통적 공화당 지지자 클랜시라도 살아 있었다면 경악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