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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서울의 예수’를 읽는 성탄절 / 법인 스님

등록 2017-12-07 18:55수정 2017-12-07 19:06

법인 스님
일지암 주지·참여연대 공동대표

성탄절 즈음이면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서울의 예수’입니다. 한강에 비친 형형색색의 서울 야경을 보고 있으면 꽃밭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로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는 시구를 읊조리게 됩니다.

불교에는 ‘불성’이 있고, 기독교에는 ‘성령’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자애의 사회적 실천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부처님의 자비가 미치지 않아야 할 곳은 이 땅에 없습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사랑의 등불은 타올라야 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자비의 손길은 펼쳐져야 합니다.

부처님은 왕자로 태어났으나 전륜성왕의 길 대신 수행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금은보석이 붙은 신발을 버리고 맨발이 되었으며, 화려한 옷 대신 사형수가 입는 누더기를 걸쳤습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유산으로 남긴 인류의 원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야 했습니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감으로써 외려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올해 성탄절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부처님의 자비가 가장 절실한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중 하나는 ‘담벼락에 기대어 겨울비에 젖고 있는’ 수인(囚人)들도 있을 것입니다.

고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한다는 것 때문에 여름징역보다는 겨울징역이 그나마 낫다고 했지만, 죄수복 한 벌로 칼바람의 겨울을 나야 하는 수인의 마음은 오죽이나 추울까요? 오스카 와일드는 <옥중기>에서 ‘그는 멸시당하고 버림받았으며 비애의 인간으로서 슬픔을 알았으니,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얼굴을 감추노라’라는 ‘이사야’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 “슬픔과 아름다움이 그 의미에 있어서나 표현에 있어서 완전히 하나로 조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록 그 최후가 사원의 휘장이 찢겨지고 어둠이 온 세계를 덮어버리며 바윗돌들이 무덤 앞에 굴러떨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할지라도, 분명 하나의 목가”라고 평했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이 넘는 수감생활을 한 진보학자이고,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 사건으로 재판에서 실형을 받은 천재 작가입니다. 사상의 진보성 때문에, 성적 정체성 때문에 수인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은 것입니다.

한 해가 다 가는 추운 겨울에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과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을 비롯해 신념을 억압받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탄압하기 위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인권에 반하는 판결입니다. 올해 성탄절에는 한상균 위원장, 이석기 전 의원은 물론이고 부당하게, 혹은 과도하게 억압받은 분들이 석방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종교적 신념 때문에 군사훈련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투옥되는 문화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입니다. 그러지 않는 한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는 ‘서울의 예수’의 비원(悲願)은 계속될 것이며,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는 ‘서울의 예수’의 통탄(痛嘆)은 되풀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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