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촛불정신 외면한 예산안 여야합의 / 남찬섭

등록 2017-12-11 17:58수정 2017-12-11 19:01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국회 탄핵소추 1주년을 맞아 정치권은 촛불정신 운운하지만 이번에 여야가 예산 통과를 위해 합의한 내용은 그들이 촛불정신을 말할 자격이 없음을 보여준다. 아이 기르는 일에 대한 정부 지원을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고 하는 식으로 편가르기 하기가 촛불정신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등 3당 원내대표가 서명한 여야 합의문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사전 양해도 없이 아동수당을 선별복지로 바꾸어 편가르기를 했다. 대상자 선별 기준과 세액공제 존속을 둘러싸고 행정부가 보이는 행동을 보면 행정부는 아동수당이 다른 나라처럼 응당 보편복지로 통과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만큼 여야 합의가 졸속이었다. 보편복지로 했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이런 분란을 일으킨 졸속 합의를 해놓고 촛불정신 운운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정부가 사업주에게 제공키로 한 지원 방식이 여야 합의에서 직접지원 방식이 아니라 근로장려세제 확대 등을 통한 간접지원 방식으로 전환됐다. 근로장려세제 확대를 통한 최저임금 지원은 정부가 복지의 일환인 근로장려세로 최저임금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에는 임금을 낮출 유인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가 근로조건으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최저임금을 복지로 대체하는 것으로, 복지를 시혜로 전락시킨 잘못된 결정이다.

문제는 또 있다. 이번 여야 합의에서 3개 정당은 내년 누리과정 재정지원 규모를 약 2조원으로 정하고 2019년 이후에도 이 금액을 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은 회계연도 1년을 넘어 예산을 정하여 월권의 소지가 있고 지방에 부담을 전가할 근거를 만들었다. 이는 복지 확대를 구조적으로 막은 것으로 여야가 권한을 남용했다.

또 국회는 건강보험 재정지원에서도 문제를 만들었다. 지난 정부는 법에 정해진 건강보험 지원 규모를 한 번도 지키지 않았고, 이번 정부는 그나마 지원 규모를 증액하긴 했지만 여전히 법정 규모에 못 미쳤다. 그런데 여야는 이를 고치기는커녕 건강보험 지원액을 더 삭감했다. 민생복지 공무원의 증원 규모를 축소시킨 것 역시 문제다. 사실 이번 여야 합의 8개 조항 중 6개 조항이 복지·노동·민생인데 이들은 모두 대상자 제한, 지급 시기 연기, 상한 설정 등으로 제도가 왜곡되거나 축소되었다.

정치권은 흔히 복지는 한번 도입하면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복지와 토건·지역개발 중 어느 것이 불가역적인가? 토건과 지역개발은 지역유지들과 결탁하여 온갖 이권을 창출하며 끈끈이처럼 지속되고, 혹 비난을 받더라도 간판만 바꾸어 유지된다.

이는 이번 예산안의 여야 합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복지·노동·민생 6개 조항에 극렬히 반대한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밀실야합을 통해 각종 지역개발로 수천억원씩 챙겨갔다. 저들은 입으로는 복지가 불가역적이라고 말하지만 기실은 토건과 지역개발이 불가역적이기를 바라는 세력이다.

예산안이 통과되자 자유한국당은 파렴치하게도 여야 합의가 무효라고 선언했다. 그렇게 하려면 보편복지를 버리고 복지 확대를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지역예산을 챙겨간 것이 무효라고 먼저 선언해야 할 것이다. 복지가 불가역적이라면 그것은 보통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어서다. 복지는 지역유지들의 부당한 이권을 제한하여 보통사람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권리친화적인 것이다. 복지가 불가역적이어서 문제라는 잘못된 신화를 벗어던지는 것이야말로 촛불정신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