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유전학자 상식은 느리지만 뚜벅뚜벅 걷는다. 정치인 부정부패의 규모는 확실히 줄었다. 수천억을 빼돌린 전두환에 비하면 최경환의 1억은 귀엽다. 물론 여전히 권력의 크기와 부패의 규모는 비례한다. 이명박이 낭비한 예산은 최소 수십조에 이르고, 박근혜는 비선실세를 위해 수천억을 썼다. 지난 10년 대한민국 정부예산 집행이 이따위였다. 물론 정권이 바뀐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민의당은 1조원의 호남 예산을 받아 들고 정부 예산안에 합의해준다. 한국당은 좌파독재라는 말로 대기업을 감싸며 정부 예산안에 반대한다. 이 나라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엔 어떤 근거도 없다. 피아 구분과 밥그릇만 존재할 뿐이다. 정치권력이 이성과 합리성을 잃은 지 오래다. 정치가 권력 다툼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 삶이 무척 고단하다. 1조가 마구 낭비되는 한국에서 800억 정도의 금액은 큰 단위가 아니다. 하지만 720개 기초과학 연구과제, 그리고 그 과제에 소속된 수천명의 과학자들에겐 인생이 달린 문제다. 투자회수조차 불투명한 자원외교에 수십조의 돈을 승인했던 기획재정부는, 애초 1조5000억으로 편성된 기초연구 지원사업비에서 400억을 삭감한 예산안을 국회에 넘겼다. 국회는 한술 더 떠 다시 400억을 삭감했다. 하지만 800억 삭감의 근거도, 이유도, 통계도 없다. 기초과학에 투자하겠다던 정부의 공약은 타성에 젖은 낡은 관료들과 과학을 존중하지 않는 국회에 의해 좌절됐다. 겨우 800억, 어쩌면 나라의 미래가 될지도 모를 그 돈이 이 낡은 적들에 의해 공중분해되었다. 과학자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기획재정부 낡은 관료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이 땅 과학자들의 숙원 중 하나였던 국가연구개발 예산권을 기재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관하기로 합의한 것이 올해 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계속 반대했으나,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출범시킨 정부의 의지가 확고했다. 과학연구를 관료들의 갑질로부터 독립시키자는 것이 문재인 정부 공약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예산권 이행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 핵심에 기재부 출신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추경호와 기재부 관료들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회 경제재정소위 간사인 그는 연구개발비 타당성 검토 권한을 과기정통부로 넘기는 법 개정안 보이콧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명령에 가까울 정도의 선언을 명시했는데도 이 영혼 없는 공무원들은 그동안의 밥그릇을 아쉬워한다. 그래서 국회의원 한 명을 움직였다. 그는 박근혜의 지역구를 승계한 기재부 출신 국회의원이다. 연예인 트위터만큼도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안이 중대하지 않은 건 아니다. 빅데이터 시대다. 이제 우리 삶에 그 기예를 적용해야 한다. 22조를 강바닥에 퍼부었던 기예는 언론 장악과 선동의 재주뿐이었다. 이제 모든 정치권력의 집행에 데이터에 기반한 근거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근거를 기록으로 남겨 정책의 효율적 집행을 진화시켜야 한다. ‘근거 기반 정책'에선 모든 가용한 데이터와 발전된 데이터 처리 기술을 정책에 활용한다. 서구사회가 오랜 기간 투자했던 기초과학은 이제 빅데이터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에 봉사한다. 그것이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다. 추경호 그리고 800억, 그 이름과 돈의 크기를 기억해야 한다. 관료를 대변하는 국회의원 한 명이 대한민국 과학의 미래를 막을 수 있다. 그게 한국 정치권력이 과학을 대하는 수준이다. 도대체 이 국회의원의 과학적 근거는 뭔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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