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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대북제재와 숨겨진 ‘얼굴’ / 김성경

등록 2017-12-13 18:22수정 2017-12-13 19:05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연일 더 강력해지고 있다는 대북제재는 북한 ‘체제’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재’의 효과성이나 결과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체제’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폭등하는 쌀값, 기름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외화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해외노동자 등의 현상은 ‘사람’이 소거된 채 체제의 향방을 예측하는 증거로만 쓰인다. 당장 쌀과 기름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북한 ‘사람’들은 대북제재의 논의에서 결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마치 대북제재는 ‘체제’, 그것도 ‘군사적 목적’의 무역과 금융거래만을 골라서 ‘제재’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아무리 대북제재가 ‘민생’ 부문을 예외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북한 체제가 가장 먼저 손을 뻗칠 곳은 결국 인민들의 그 알량한 주머니다. 수많은 외세 침략을 받아온 우리네 역사가 증명해주듯 ‘제재’ 속에서 고립된 국가와 위정자는 결국 백성의 굶주림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더 우선시해왔다. 특히 북한 체제 특성상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도 못 치를 것이 없다. 설령 그것이 인민들의 고통과 굶주림, 그리고 결국 죽음일지라도 말이다.

최근 일본 해안에 자주 출몰한다는 북한 어선은 ‘제재’ 국면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북한 ‘사람’의 몸부림을 짐작게 한다. 다 낡아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북한 어선 내 백골화된 시신, 기름이 떨어져 표류한 북한 목선과 그 안의 헐벗은 어민, 일본 바닷가 마을에 침입해 식료품 등을 훔쳐 달아나려 했던 이들이 바로 살아남기 위해 작고 낡은 목선에 몸을 맡긴 북한 ‘사람’인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배라도 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안도할 게다. 아무리 북한 정부에서 더 많은 목표량을 책정하더라도, 배를 탈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몫을 조금이라도 챙겨 근근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물을 ‘고여서’라도 조각배에 몸을 싣고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먼바다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진 속 북한 어민의 몰골은 참혹하다. 배에 오를 때는 풍어의 희망을 안고 출발했지만, 모진 바다에 혹독히 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체포하려는 일본 경찰 앞에서 차라리 악에 받쳐 저항이라도 했으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까. 힘없이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우리가 앞장서 ‘제재’한 것은 북한 ‘체제’인데, 그 위정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선량한 사람들이 죽음의 벼랑 끝에 몰린 셈이다. 맞다.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을 여기까지 내몬 책임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의 목숨 값이 제재의 당위보다도 혹은 대화를 위한 전략이라는 계산보다 결코 가벼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국가의 보호는커녕, 국제사회의 제재와 강압적 국가가 만들어내는 이중 착취 구조에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분단은 우리가 북한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감각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철학자 레비나스가 말했던 것처럼 가장 연약한 “얼굴”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그 타인이야말로 우리를 진정으로 구원해줄 메시아다. 어쩌면 이들의 그 고통스러운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타자를 인지조차 할 수 없게 된 한국 사회의 절름발이 감각과 윤리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대북제재의 파고 속에 잊힌 북한 사람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그들이 아닌 우리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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