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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내 맘대로 사자성어 / 김남일

등록 2017-12-19 18:03수정 2017-12-20 17:25

김남일
정치팀 기자

12월20일 오늘 19대 대선이 치러졌다면 정치인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당대표 선출도 힘들었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의 최대 수혜자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홍준표 대표인 이유다.

홍 대표는 <삼국지>를 인생의 책으로 꼽는다. 중국에선 권모술수를 집대성했다며 ‘나이 들어 읽지 말라’고 권한다. 그는 ‘지흠동풍’ 네 글자를 사랑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정치바람만 불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제갈량은 ‘욕파조공 의용화공 만사구비 지흠동풍’이란 말로 주유의 속마음을 꿰뚫었다. 요즘 정국으로 풀어보면, 문재인 정권을 깨뜨리자니 불같은 야성의 제1야당이 필요한데 홍준표식 인적·조직 혁신은 얼추 끝났으니 영남에서 불어오는 동남풍만 있으면 된다는 거다. 그래서 손쉬운 대구 당협위원장 자리를 원하는지 모르겠다.

홍 대표는 5·9 대선 때도 지지율 동남풍이 불고 있다며 부들부채를 마구 흔들었지만 미풍에 그쳤다. 제갈량이 동남풍을 약속했던 날짜가 동짓달 스무날에서 스무이틀이다. 오늘 대선이 치러졌다면 영남발 동남풍이 불었을까. 기상청이 예보한 20일 서울 아침 기온은 영하 8도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대구·경북의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33%)에도 밀리는 24%라며 한랭전선 고착화를 전했다.

<교수신문>이 올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을 택했다. 문재인 정부 7개월 적폐청산 기조를 반영한 것이다. 2001년 시작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대체로 그해 정치권과 권력의 풍속도를 압축해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의 짧은 4년은 시대착오를 꾸짖는 ‘도행역시’로 시작해 옳고 그름을 뒤바꾸는 ‘지록위마’, 어리석고 용렬한 지도자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다는 ‘혼용무도’, 강물이 화나면 배를 뒤집는다는 ‘군주민수’로 막을 내렸다.

여야 정치권은 배수진의 각오를 다질 때 밥솥도 깨고 배도 침몰시키는 ‘파부침주’를 입에 올린다. “돌이켜보면 여러 불충한 일들이 있어, 위로는 대통령님께, 나아가서는 국민과 나라에 많은 걱정을 끼친 일들이 있다. 올해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구현될 수 있도록 파부침주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2015년 정초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시무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1년도 지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면 청와대가 파부침주를 입에 올려선 안 될 일이었다. 정치의 언어는 그렇게 민감한데, 그해의 사자성어가 ‘혼용무도’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 대선이 치러졌다면 박근혜 청와대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상납받은 특수활동비로 여론조사를 돌렸을지 모른다. 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한 문화·예술계 인사를 블랙리스트에 업데이트했을 것이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을 열심히 재판에 넘기거나, 공안사건 큰 거 한방으로 일거에 분위기를 뒤집으려 했을 것이다. 경찰은 찻길에 한쪽 발만 내디뎌도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을 것이고, 북서풍 칼바람 영하의 날씨에도 물대포 수압을 낮추지 않았을 것이다. <문화방송>과 <한국방송> 뉴스는 ‘목불인견’이었을 것이고, 삼성은 여전히 말 사료 값을 대고 있었을 것이다. 5·9 대선 이후 ‘물시인비’, 제도는 그대로인데 사람은 바뀌었다.

오늘 대선이 치러졌어도 정권은 바뀌었을 것이다. ‘내로남불’은 비단 야당만의 레토릭이 아닌, 남은 임기 4년5개월 집권세력 스스로를 경계하는 네 글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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