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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카이로스의 시간 / 조일준

등록 2017-12-31 17:45수정 2017-12-31 19:09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살비아티의 프레스코 벽화 ‘카이로스’. 위키피디아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살비아티의 프레스코 벽화 ‘카이로스’. 위키피디아
고대 그리스어(헬라어)에는 시간, 때를 나타내는 두 가지 말이 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과거-현재-미래로 연속해 흘러가는 객관적·정량적 시간이다. 연대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 ‘크로니클’(chronicle)이 여기서 왔다. 반면, 카이로스는 인간의 목적의식이 개입된 주관적·정성적 시간이다. 적절한 때, 결정적 순간, 기회라는 뜻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카이로스는 ‘기회와 행운의 신’이다. 로마 신화에선 오카시오 또는 템푸스. 영어단어 ‘어케이전(occasion·기회)과 ‘템퍼럴’(temporal·시간의, 속세의)의 어원이다. 제우스의 막내둥이 카이로스는 이름에 딱 걸맞은 외모를 지녔다. 앞머리는 풍성한데 뒤쪽은 매끈한 대머리다. 등에 달린 커다란 날개도 모자라, 두 발목에도 날렵한 날개를 달았다. 한 손에는 저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었다. 앞에서 다가올 때엔 누구나 쉽게 머리카락을 움켜쥘 수 있지만, 바람처럼 지나가버리면 그만이다. 카이로스를 붙잡는 건 저울로 잰 분별력과 칼 같은 결단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고 느낀다. 여기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우선 인체의 생리시계가 느려진다. 이에 더해, 살면서 지식·정보와 경험이 쌓일수록 기억할 게 적어지고 시간의 밀도는 흩어진다. 라틴어 경구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새삼스러워지기도 한다. 흔히 ‘오늘을 즐겨라’ 정도로 번역되는 이 말은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가의 마지막 구절이다. 여기서 동사 원형 ‘카르포’(carpo)는 ‘수확하다, 붙들다’란 뜻이다. 디엠은 ‘날’을 의미하는 ‘디에스’(dies)의 목적격이다. 그러므로 ‘카르페 디엠’의 본디 의미는 ‘내일을 너무 기대하지 말고 오늘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다.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모든 이에게 가슴속 환한 촛불이 꺼지지 않는 카이로스의 시간이기를.

조일준 책지성팀장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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