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하 스테피), ‘과학기술활동 및 과학기술부문과 관련된 경제사회의 제반 문제를 연구분석함으로써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수립과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표로 1987년 설립됐다. 국가의 미래에 중요한 기관이 대통령도 아닌 국무총리 산하 단체다. 게다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이다. 그래서인지 역대 원장의 약력은 행정학, 경영학, 경제학 전공자가 대다수로, 과학기술 현장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과학기술정책의 수립을 주도하고 있다.
박근혜 시절 원장이었던 송종국은 원장 인사말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우리 경제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한 길은 창조경제이며, 창조경제 구현의 핵심은 과학기술혁신입니다.” 송종국은 언젠가 인터뷰에서 스테피가 이룬 대표적 성과로 이명박의 녹색성장을 들었다. 녹색성장과 창조경제로 국민의 혈세가 수십조 가까이 낭비되었어도 스테피는 어떤 책임도 진 적 없다. 이 기관은 한때 황우석 연구의 경제적 가치를 50조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들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만 양산해왔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일해왔는지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하 키스텝), ‘국가 과학기술 기획, 기술예측·수준조사, 전략의 수립,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 분석, 평가 및 예산의 조정, 배분을 지원하고 국가연구개발시스템 실효성을 제고하며 과학기술 국제협력에 관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과학기술 진흥에 기여’하기 위해 1987년 설립됐다. 현재 과기정통부 소속으로 있다. 나름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해왔다는 필자도 여전히 키스텝이 스테피와 큰 틀에서 뭐가 다른지 알지 못한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키스텝의 초대 원장 장문호는 스테피의 7대 원장이 되고, 키스텝의 현재 원장 임기철은 스테피 부원장 출신이기도 하니 말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원장 인사말의 첫 문장은 “혁신을 선도하는 싱크탱크 키스텝, 합과 협의 정신으로 제4차 산업혁명의 선제적 대응에 앞장서겠습니다”로,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을 지낸 인물이다. 과학기술부를 없애고 교육부로 통합시킨 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을 총괄수행했던 인물이,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을 기획하고 평가할 핵심 부서의 원장으로 앉았다. 사람 좋은 탕평책인지, 과학기술인의 여론 따위는 상관없다는 건지, 아니면 과학기술정책과 관련한 인재풀이 전무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송종국의 창조경제를 임기철의 제4차 산업혁명으로 바꿔 읽어보자. 같은 내용이다. 우리 두 기관은 정권이 어떤 철학으로 정책을 내놓건, 그것을 충실히 뒷받침하겠다는 뜻이다.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고 기획해야 하는 두 부서가, 창조경제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허울 좋은 포퓰리즘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니 그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ESC는 1987년 우리 헌법이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기술해 놓은 한계를 딛고, 이를 개헌하는 것에서부터 과학기술정책의 개혁을 시작하려고 한다. 87년 설립된 위 두 기관이야말로 그 헌법의 조문을 충실히 과학기술에 적용하고 있는 핵심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현장의 과학자를 중용한 정부의 진심을 믿는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노력이 과학기술계에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