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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홍준표와 대구

등록 2018-01-10 19:40수정 2018-01-10 22:53

8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홍준표(앞줄 왼쪽 여섯째) 당 대표가 당원들의 공연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정유경 기자
8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홍준표(앞줄 왼쪽 여섯째) 당 대표가 당원들의 공연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정유경 기자
“내가 티케이(TK) 성골은 아니더라도 진골쯤은 된다.” 지난해 2월 대선 출마를 앞둔 홍준표 경남지사가 대구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3월18일 대선 출마 선언을 대구 서문시장에서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합천에서 자랐다. 창녕·합천 모두 대구와 인접한 곳이다. 홍 대표는 대구에서 중·고교를 졸업했다. 홍 대표 뒷바라지를 위해 온 가족이 대구로 이사 와 단칸 셋방에 살았고, 아버지는 막노동, 어머니는 사과 행상, 누나는 직물공장에 다녔다. 평준화 이전이던 당시 홍 대표가 장학금을 받고 다닌 영남고는 명문고가 아니었다. ‘돈 때문에’ 경북고를 못 간 홍 대표는 고려대 1학년 때 첫 미팅에 나갔다가, 경북여고 출신 여대생을 만났다. 그러나 ‘영남고’ 한마디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 대표는 이후 미팅에 나가지 않았다. 정치인이 된 홍 대표가 지난 대선 전까지 자신의 ‘대구 인연’을 언급한 적은 거의 없었다.

홍 대표는 지난 7일 자유한국당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직 공모를 신청했다. 비난이 거세자, 그는 “대구에 출마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4월21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당권을 노리기 위해 대선에 나온 게 아니냐’는 질문에 “추하게 당권에 매달리는 그런 짓은 절대 않겠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 한달여 뒤인 6월14일 “곤혹스럽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당권 도전을 선언했고, 7월3일 당대표에 선출됐다.

홍 대표의 정치 입문은 1996년 서울 송파갑이었다. 그러다 99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자, 2001년 동대문을로 지역구를 옮겼다. 2012년 총선에서 낙선하자 고향인 경남지사로 내려왔고, 이젠 소원이었다는 “대구에서 정치 한 번” 하려 한다. 홍 대표의 자서전 제목은 <변방>이다. ‘변방에서 중심을 향한다’며. 대구는 ‘변방’인가, ‘중심’인가.

권태호 논설위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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