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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사랑하는 사람들 / 이라영

등록 2018-01-17 18:10수정 2018-01-18 10:02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1월15일은 마틴 루서 킹의 생일이라 미국에서 공식 휴일이다. 예수와 부처처럼 성인이 아닌 한 사람의 생일이 전 국가적 휴일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주에서는 올해부터 오바마의 생일인 8월4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상징 때문에 아마 누군가에겐 정말 ‘태어나줘서 고마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일리노이주에만 해당되고, 법적 공휴일도 아닌 무급 휴일이긴 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의 생일을 기념일로 만드는 정책에 조금 갸우뚱하게 된다.

서울시 몇 군데의 지하철역에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 축하 광고가 등장했다. 의문이 밀려들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해피 이니 데이, 문 라이즈 데이처럼 대통령의 이름을 활용해서 생일을 축하할 뿐, 생일을 기념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니까. 곧 일부 지지자들이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문구로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문재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과장이겠지.

그러나 아무리 봐도 과장이 아니라 곧 실현될 전망으로 보인다. 이를 반기는 이들은 아이돌 스타에게는 해도 되는데 정치인은 왜 안 되느냐, 외국에서 부러워할 것이다, 제 돈으로 좋아하는 정치인 생일 축하 광고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냐고들 한다.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돈을 지불했느냐 아니냐에 달린 걸까. 게다가 아이돌 스타와 정치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동일시한다.

박근혜 탄핵을 슬퍼하며 박근혜 집 앞에서 ‘마마’를 외치던 목소리도 역시 자발적이었다. 박근혜는 이러한 환상에 잘 봉사했고 그것이 그의 정치적 자산이었다. 물론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지는 우상 숭배와 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열광적인 지지의 양상이 동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후자의 지지자들은 전자와 달리 그 지지 대상에게 인간적인 친밀함을 느낀다. ‘각하’나 ‘국모’, ‘마마’라는 호칭이 아니라 ‘노짱’이나 ‘달님’처럼 친근한 호칭을 사용했다.

그러니 박정희 동상을 참배하는 행동과 대통령 생일 축하를 광고하는 모습이 동일하다는 과격한 주장을 펼 생각은 없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애당초 각기 지향점이 다른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상화와는 다르다 해도, 아이돌 연예인을 대하듯이 정치인에게 환호하는 태도는 과연 안전할까. 시민의 정치적 참여가 ‘덕질’로 변모하고 있다. 이 자발적 행동을 막을 수는 없어도 비판할 수는 있다.

연예인은 어느 정도 환상을 파는 직업이다. 환상을 향한 사랑은 때로 실체를 외면하고 착취한다. 그렇기에 그 환상과 자신의 실체 사이의 괴리감만큼 연예인의 외로움도 자란다. 정치인에 대한 사랑을 열렬히 표현하는 태도는 어떨까. 갈수록 정치인을 향한 애정 표현이 정치적 참여와 동일시되고 있다. 참여는 주체적 개입이다. 당연히 비판적 성질을 띤다. 그러나 ‘우리 이니’에게 너무도 친근함을 느낀 나머지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조차 때로 인정하지 않는다. 비판 없는 지지, 곧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외친다. 개입이라기보다는 응원에 가깝다. 게다가 이 ‘사랑’을 뉴욕이라는 시장 권력 한복판에서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정권은 교체되었다. 대통령의 인기가 높다. 나 역시 제발 정권이 교체되길 갈망했고, 이번 정부가 정말 잘하길 바라는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만으로 이 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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