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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일본의 ‘위대한’ 과학 / 김우재

등록 2018-02-05 18:01수정 2018-02-05 18:58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망둑어과 어류의 진화’, 일왕 아키히토가 1984년 발표한 논문 제목이다. 일왕은 어류학자다. 취미나 정치적 쇼가 아니다. 그는 궁에 사는 너구리의 배설물을 연구해 2008년에도 논문을 발표했다. 일왕은 과학을 사랑한다. 1992년에는 <사이언스>에 ‘일본의 과학자를 육성한 사람들’이라는 과학사 에세이를 발표했다. 일본 왕실 전체가 과학을 사랑한다. 그의 아버지 쇼와도 어류학자였고, 첫째 누이도, 차남인 아키시노노미야, 딸 구로다 모두 생물학을 연구했다.

한국의 역대 정치지도자 중 과학자는 없다. 박근혜는 이공계 출신 최초의 대통령이었지만, 무늬만 전자공학과 졸업자였다. 집권 시절 그에게선 엔지니어들이 지닌 미덕을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다. 한국 사회 지도층은 결코 자녀를 과학자로 키우지 않는다. 한국도 일본도 과학을 서구에서 받아들였지만, 사회 속에서 과학의 위치는 전혀 다르다. 일본은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과학 선진국이다. 일본은 왕이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흔히 일본을 권위주의 국가로 그린다. 우리가 일본을 정치적으로만 소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베 정권이 “과학기술은 더 이상 경제발전의 단편적 수단이 아니며” 인류가 공동으로 직면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정책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요인”으로 정책을 수정했다는 뉴스를 접할 수 없다. 여전히 낡은 헌법 속에 과학기술을 경제적 도구로만 언급해 놓은 한국은 과학 후진국이다. 그게 현실이다.

일본의 과학기술정책을 수입해 오긴 했다. 일본의 종합과학기술회의를 본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만들었다. 종합과학기술회의는 내각과 범부처 사이를 조율하는 진정한 의미의 컨트롤타워로 매달 한차례 회의가 열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단 한번 열린 자문회의는 심지어 올해 1월엔 열리지도 않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엔 매달 열리던 회의다. 심지어 자문회의 전문위원은 아예 지정조차 되지 않았다.

일본의 과학기술전략회의를 모델로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발족시켰지만, 관료주의의 벽에 막혀 개점휴업 상태다.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실은 겨우 네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업무는 더 늘었다. 과학기술의 혁신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겠다는 정부의 모습은 아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화려하게 출범시키며 여론을 환기하려 했지만, 비트코인 대응에서 보여준 모습은 철저한 인문학 정부의 마인드였다. 어느 토론에서 유명해진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는 농담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정말 문송해야 한다.

문제는 정부조직이 아니다. 위원회 한두 개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아베 정권조차 근간을 바꾸지 못했던 일본의 과학기술체계, 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을 정치지도자들과 정부의 관료들이 뼛속까지 깨달아 실천하고 있는 일본의 문화적 위상, 그런 차이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1932년 설립된 일본학술진흥회(JSPS)는 ‘Science’(과학)를 학술로 해석하고, 모든 학술활동을 지원하는 독립행정법인이다. 일본의 과학은 오래된 문화다. 비트코인 논란이 과학 대 인문학의 대결이 되는 한국 문화는 ‘후졌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단위의 고령화, 재난 재해, 저성장을 경험했다. 그들이 선택한 해결책은 적극적인 과학기술의 활용이다. 과학적 사회에서 과학이 뿌린 문화는 누적적으로 확장된다. 일본이 블록체인 정책에서 앞서 나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일본은 가라앉지 않는다. 위대한 과학의 문화를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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