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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수호랑과 생명평화 올림픽

등록 2018-02-08 18:22수정 2018-02-09 15:08

남종영
애니멀피플 팀장

평창겨울올림픽의 마스코트는 ‘수호랑’이다. 민속 문화에서 신령한 동물로 그려진 ‘백호’를 모델로 했다. 절묘한 선택이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민족 최고의 상징 동물은 호랑이이고,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계승했기 때문이다. 디자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인 2013년 사단법인 한국범보전기금은 ‘호돌이 30주년’을 맞아 호돌이의 손주뻘 되는 백호를 평창의 마스코트로 삼자고 제안했다. 호랑이는 평균 수명이 15~20년이다. 호돌이의 삼대가 태어났는데, 상서롭게도 흰 호랑이여서 평창에서 활약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게 메시지였다.

그러나 현실의 수호랑은 야생에서 사라졌다. 1958년 인도에서 포획돼 숨진 게 마지막이다. 중국 연구팀이 백호 유전자를 분석해 2013년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은 적이 있다. 연구 결과, 백호는 호랑이의 아종도, 알비노(백색증)도 아닌 벵골호랑이한테만 나타나는 돌연변이였다. 인간과 닭, 말에도 있는 단 하나의 유전자가 페오멜라닌을 감소시켜 노란 털빛을 뺐다. 하지만 백호는 극소수여도 야생에서 계속 살아왔고, 유전 질환인 사팔눈을 제외하고는 건강했을 거라고 연구팀은 추정했다.

지금 수호랑을 보려면 동물원에 가야 한다. 동물원에 사는 백호는 건강하지 않다. 어미는 사산을 하고 태어난 새끼는 일찍 죽거나 안면기형 등의 문제를 안고 산다. 이유는 백호에게 있지 않다. 동물원들이 근친번식을 해왔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백호가 포효하고 있다.  용인/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09년 12월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백호가 포효하고 있다. 용인/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사실 전세계 동물원에 사는 백호들은 1951년 인도 중부의 레와에서 잡힌 ‘모한’이라는 단 한 마리의 벵골호랑이를 선조로 두고 있다. 모한은 궁전에 살면서 근친교배를 당했고, 딸 ‘라다’와 낳은 새끼 ‘모히니’가 미국으로 옮겨져 씨를 뿌린다. 카리스마 넘치는 이 하얀 호랑이의 상품성을 직관한 신시내티 동물원은 곧장 근친교배로 백호를 찍어내며 장사를 시작한다.

국내에서는 여섯 마리가 에버랜드 동물원에 산다. 에버랜드에 따르면, 1989년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과 오마하 동물원에서 세 마리를 수입한 게 처음이라고 한다. 서울대공원을 포함해 한국 동물원은 한때 열 마리가 넘는 백호를 생산한 ‘백호 공장’이었다. 미국 동물원수족관협회(AZA)는 2011년 백호의 번식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동물원의 고유 기능인 ‘종 보전’과 관계없다는 이유에서다.

평창겨울올림픽의 마스코트 수호랑(왼쪽)과 페럴림픽 마스코트 반다비.
평창겨울올림픽의 마스코트 수호랑(왼쪽)과 페럴림픽 마스코트 반다비.

과거 한국의 숲에는 백호가 살았을까? 극동아시아에 서식하는 호랑이는 벵골호랑이와 다른 종인 시베리아호랑이(한국호랑이)다. 이 종에서 백호가 발견됐다는 엄밀한 과학적 보고는 없지만, 한국과 중국의 옛 기록은 가능성을 더한다. 태종실록에도 중국의 주왕이 사냥하다가 백호를 잡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곳에서도 드물게나마 백호가 탄생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질문이 아득할 정도로 우리는 호랑이를 문화적 상징으로만 생각했지, 경계에 선 그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범보전기금 대표인 이항 서울대 교수는 말한다. “옛날 한반도에 살던 호랑이나 지금 중국, 극동 러시아에 사는 호랑이는 유전적으로 똑같은 호랑이다. 그곳의 호랑이를 연구하고 보전하는 게 우리 호랑이를 보전하는 것이다. 결국 남쪽으로 서식지를 넓혀 올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목격된 지 90~100년이 되어가지만, 호랑이는 여전히 멸종위기 1급의 법적 지위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호랑이 보전을 위해 쓰는 예산이 전무하다. 돌연변이를 생산해 구경했고, 올림픽 마스코트까지 써먹었다면, 이제 호랑이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지 않을까?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호랑이를 구하고, 동물원의 비루한 삶을 개선하는 게 올림픽이 전하는 평화의 정신에도 부합될 텐데 말이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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