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평론가 볼 때보다 보고 난 뒤에 문득문득 생각나면서 더 좋아지는 영화가 있다. 며칠 전 본 <올 더 머니>(리들리 스콧 감독)는 우화 같은 어법이나 일부러 엇박자를 내는 듯한 능청맞은 연출이 요즘 영화 같지 않고 소품처럼 다가왔는데, 보고 나서 자꾸 생각이 난다. 가장 큰 이유는 주연배우의 연기이다. 1970년대 중반에 백만장자 폴 게티의 손자가 납치된 실제 사건을 다루는데, 84살의 폴 게티를 89살의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연기한다. 폴 게티가 세계 최대의 갑부로 기네스북에 오르던 시절에, 이탈리아 마피아가 17살 된 그의 손자를 납치하고 몸값으로 1700만달러를 요구한다. 폴 게티는 돈을 안 주겠다고 공언한다. 자기 손주들 중 납치된 아이가 가장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나름 풀어내려고 방법을 강구하기도 하지만 정작 돈을 안 준다. 계절이 바뀌고 납치범들이 손자의 귀를 잘라 보내오자 그제야 돈을 준다. 그것도 세금공제 혜택 범위 안에서 300만달러 남짓을 보낸다(손자는 그때의 후유증으로 약물중독과 전신마비를 앓았다고 한다). 구두쇠? 그의 재산에서 1700만달러는 푼돈일 텐데. 크리스토퍼 플러머라는 노배우를 보고 있으면 구두쇠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 양반이 돈을 정말 안 줄 건지, 시간 끌기 하는 건지, 나름 다른 혜안이 있는 건지, 좀처럼 잘 안 읽힌다. 나이듦 자체가 훌륭한 연기가 된다. 눈빛이 깊은 건지 흐린 건지, 아무튼 아득해서 저 속에 꼭 읽어내야 할 무엇이 있을 것만 같다. 영화에서 폴 게티가 말한다. “사람이 부자가 되면 자유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해. 무엇이든 할 수 있거든. 심연이 확 열리는 거야. 나도 그 심연을 봤어. 그 심연이 사람을 망치고 결혼을 망치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망치는 걸.” 그래서 그는 말한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부자로 사는 게 훨씬 어렵다”고. 사람에게 질린 폴 게티는 손자의 몸값은 안 주면서 고가의 미술품을 끝도 없이 사들인다. 그걸 보면 한 가지는 확실하게 다가온다. 진짜 부자들은 그만큼 돈에 철저하구나! 저런 야박한 굳건함이 있어야 질서가 되고 기업이 될 거다. 이재용 2심 재판을 두고 한 법조인 선배와 말했다. “대가 없이 대통령에게 협박당해서 돈을 줬다는 건데 그럴 수도 있을까요?” “에이, 삼성이 어떤 사람들인데.” 그렇지. 삼성이라면 폴 게티에게 꿀릴 게 없을 텐데. 돈에 대한 태도가 더 철저하면 철저하겠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 판결을 반박할 근거는 못 될 거다. 그런데 2심을 맡은 부장판사가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 이런 말이 있었다. “어느 기업인이 대통령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 잠깐 내 눈을 의심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사석도 아니고 언론에다가, 그것도 일반론으로. ‘우리나라 대통령 세지 않냐. 그러니 (법이고 뭐고) 돈 달라면 줄 수밖에 없지 않냐.’ 이런 말 아닌가. 법을 수호해야 할 법관이, ‘법이 무용한 거 다 알지 않냐’는 식으로 말한다. 그게, 법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돈을 준 사람을 풀어준 이유란다. 폴 게티는 마피아가 손자를 납치해 협박하는데도 수개월 끌면서 손자가 귀까지 잘린 뒤에 몸값을 5분의 1로 깎아서 줬다. 삼성의 이재용은 대통령이 요구하니까 대가도 없이 수백억원을 출연하고 수십억원을 줬단다. 거기에 대해 법관이 말한다. “어느 기업인이 대통령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느냐.” 폴 게티가 이상한 건가, 이재용이 이상한 건가, 한국이 이상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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