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본영
국제뉴스팀장
서구 현대 정치인 중 네빌 체임벌린만큼 오명을 뒤집어쓴 이도 찾기 어렵다. 영국 총리였던 그는 1938년 9월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을 접수하는 대신 추가 침략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뮌헨협정에 히틀러와 함께 서명했다. 히틀러는 협정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고 6개월 뒤 체코슬로바키아 전체를 손에 넣었다. 이어 폴란드를 침공해 사상 최대의 전쟁이 막을 올렸다. 체임벌린의 ‘어피즈먼트’(appeasement, 유화책)는 무책임과 비겁함의 동의어로 굳어졌다.
체임벌린이라는 이름은 ‘악당’에게 무르다고 생각되는 지도자를 욕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2015년에 미국이 이란과 핵 합의를 하자,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우리 시대의 체임벌린”이라고 불렀다. 오바마는 2013년에는 넬슨 만델라의 장례식에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악수했다가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한테 “체임벌린이 히틀러와 악수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한국의 ‘어피즈먼트’를 비판했다.
이러니 ‘제2의 체임벌린’으로 비칠까봐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 2009년 억류된 기자 둘을 빼내려고 방북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국무부로부터 절대로 웃는 모습의 사진을 찍히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 당시 국무장관은 아내 힐러리였다. 이튿날 비밀 회동 일정까지 잡아놓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겨울올림픽 리셉션에서 북한 대표단을 피한 것도 ‘체임벌린스럽다’는 비난을 염려해서가 아닐까 싶다. 체임벌린은 매파에게 정적을 저주하는 만사형통의 부적이다. 최근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가 체임벌린 정권을 닮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체임벌린은 정말 바보였을까? 다른 선택도 결과가 나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시각도 지금은 많아졌다. 뮌헨협정 직전 영국 군부에서는 비행기를 더 만들려면 전쟁 발발을 늦춰야 한다고 보고했다. 스페인 게르니카 공습을 지켜본 영국군은 독일 공군이 2~3주면 영국인 50만명을 살상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영연방 국가들은 전쟁에 나서지 않겠다고 했다. 1차대전에서 동맹이었던 러시아(소련), 일본, 이탈리아는 모두 적대적으로 돌아선 상태였다.
체임벌린이 오명을 쓴 데는 후임인 윈스턴 처칠의 혹평도 한몫했다. 처칠은 프랑스 쪽에서 진격하면 뮌헨협정 즈음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고 했다. 영국이 시간을 벌어 무장을 강화했지만 독일은 더 빨리 군비를 확충했다는 게 처칠이 통탄한 대목이다. 하지만 그것도 결과론적 해석이고, 발을 빼는 프랑스를 어떻게 설득했겠냐는 식의 반론도 가능하므로 논쟁은 끝나기 어렵다. 사실 불굴의 영웅 처칠도 전략적 행운을 몇차례 안은 끝에 승자가 될 수 있었다. 됭케르크에서 독일 기갑부대가 연합군 34만명을 에워싸고도 진격을 중단하고, 독일과 일본의 과욕이 소련과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인 게 그렇다.
오늘 눈앞을 흐르는 강물은 어제의 그 물이 아니다. 과거의 교훈은 새겨야 하지만 맥락과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단순한 대입은 맹동주의를 낳는다. 80년 전 체임벌린은 전쟁과 협상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그는 뮌헨협정으로부터 1년이 지나 독일이 폴란드를 치면서 훨씬 큰 야망을 노출하자 이번에는 선전포고에 나섰다.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한 것은 이미 12년 전이다. ‘우리 시대의 처칠들’은 그동안 정권을 두 번 잡았으면서도 왜 ‘행동’에 나서지 않았나? ‘체임벌린’을 쉽게 갖다 쓰려면 그것부터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