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별의별 약이 다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내키지 않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약을 먹고 죽은 것처럼 꾸민다. 그 약은 “숨이 멎고 피가 차갑게 식은 상태에서 42시간을 죽은 듯 자게 하는” 약이었다. 요즘 ‘냉동인간’ 시술자들이 간절히 손에 넣고 싶은 약이겠다.
조선 중기의 의서 <의림촬요>에 ‘벽사단’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몸을 심하게 공격해 오는 괴질, 또는 산골짜기에 사는 구미호의 정(精) 때문에 병이 난 것을 치료한다.” 구미호는 모양이 여우와 같고 꼬리가 아홉 개이며, 어린애 우는 소리를 내는 짐승으로 청구 땅(우리나라)에 산다고 한다. 조상들이 구미호를 실제 보았다는 기록은 없지만, 구미호 때문에 생긴 병을 치료하는 약은 있었다.
폴란드의 작가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에비치가 1930년에 발표한 소설 <탐욕>(Insatiability)에는 ‘무르티 빙(Murti Bing)의 알약’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무르티 빙은 중앙아시아 유목 부족의 왕이다. 그는 동유럽을 침공하면서 상대가 항복하지 않으면 몰살하고 항복하면 모두 노예로 삼는 잔혹한 사람이었다. 무르티 빙이 어느 작은 나라를 목표로 삼고는 공격 전날 그 나라 왕에게 “이 약을 먹으면 부끄러움이 사라진다”는 설명과 함께 알약을 보냈다. 작은 나라 왕은 그 약을 먹고, 부끄러움을 깨끗이 잊고 다음날 바로 항복했다.
무르티 빙의 알약이 실제로 있을까? 평창 올림픽 폐막식에 참가하는 북한 대표단장으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방남하는 것을 몸으로 막겠다고 통일대교 입구에서 밤샘농성을 한 김성태 원내대표, 국회에서 김상곤 교육부 장관에게 황당한 질문을 해서 비판받은 이은재 의원을 대놓고 두둔한 홍준표 대표를 보면서, 자유한국당이 끝내 그 약을 손에 넣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