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유혹이나 구애에 여성이 행복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난 그럴 일이 별로 없었다. 언제나 나를 유혹하려는 건 여성들이었으니. 중요한 건 그 구애가 ‘우아’하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 총선에서 재기한 미디어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1) 전 이탈리아 총리가 올해 1월 방송에 나와 한 말이다. 그는 배우 카트린 드뇌브 등 프랑스 여성 100명이 현재의 미투 운동에 대해 “지나치게 청교도적이며 남성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르몽드>에 기고한 것을 두고 “축복받은 말”이라 칭찬했다. 거센 반발을 일으킨 기고에 반색한 것은 둘째 치고, 과연 그가 ‘우아’한 구애를 입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인가.
우습거나 즐거울 때 별 뜻 없이 쓰이던 단어 ‘붕가붕가’는 2011년 베를루스코니 덕에 권력자의 섹스파티를 뜻하는 세계적 유행어가 됐다. 미성년자와 13차례 돈을 주고 성관계를 맺은 혐의를 받던 그는 2015년 항소심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얻어낸 데 이어 이번 선거로 기사회생했다. 증인들에게 돈을 주고 위증을 교사한 의혹은 아직 재판중이고 탈세 혐의로 내년까지 공직을 맡을 수 없지만, 이제 그가 ‘킹메이커’가 되거나 총리로 돌아올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을 폭로하며 할리우드발 #미투에 불붙였던 배우 겸 감독 아시아 아르젠토는 정작 고향인 이탈리아에선 우파 매체들로부터 ‘창녀’ 비난을 들었다. 아르젠토는 이탈리아 여성의 낮은 지위엔 베를루스코니와 그의 민영방송들이 수십년간 재생산해온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문화 탓이 크다고 주장한다. 그가 선거기간 내내 베를루스코니 비판을 멈추지 않은 이유다. 거센 미투 열풍과 아르젠토 같은 이들의 호소에도 그는 재기했다. 기성 정치권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정의가 신뢰를 상실할 때 그 공백을 틈타 얼마나 ‘이상한’ 세력들이 고개를 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암울한 사례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