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회학 연구자 검찰 내 성폭력이 알려지기 얼마 전인 지난 1월 말, 서울 종로 여관 방화사건이 있었다. 성매매 여성을 불러주지 않는다고 여관 주인과 언쟁을 벌이다 화가 나서 불을 지른 남성 때문에 6명이나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내 눈에 들어온 숫자가 있었다. 일부 희생자들의 나이였다. 34살 여성과 그의 10대 두 딸. 전혀 모르는 사람의 삶을 함부로 넘겨짚을 수는 없지만, 34살 여성이 14살과 11살 딸이 있다는 건 20대를 오롯이 임신, 출산, 육아로 보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아이가 어릴 때 주 양육자는 멀리 여행하기가 어렵다. 여행은커녕 외식도 전투적으로 한다. 13살 딸이 있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애가 이 정도 되니까 이제는 같이 다니는 게 오히려 편하고 재밌다고. 지방에서 서울에 왔다가 하루 숙박비가 1만5천원인 저렴한 숙박업소에서 딸들과 함께 몸을 누인 그도 그랬을지 모른다. 이제 어느 정도 제 앞가림을 하는 10대의 두 아이와 함께 모처럼 설레며 떠난 여행길. 이들은 전국여행 중이었다고 했다. 누가, 무엇이 이들을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여관에 불을 지른 그 남성은 왜 방화를 저지를 정도로 분노했는가. ‘잔다’라는 동사는 수면을 의미하면서 한편으로는 성관계를 뜻한다. 숙박업소는 이 두 가지 의미의 ‘잔다’를 실행하는 장소이다. 러브호텔은 ‘러브’가 있든 없든 ‘자는’ 사람들의 정거장이다. 혼자 숙박하는 남성은 ‘위안’해줄 여자를 찾을 수도 있는 장소다. 오죽하면 간첩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항목 중 하나가 홀로 여관에 장기투숙하면서 ‘아가씨’를 부르지 않는 남자라고 했을까. ‘아가씨’ 없이 혼자 장기투숙하는 한국 남성은 ‘시스템’을 모르는 간첩으로 의심받을 정도다. 숙박의 개념이 젠더에 따라 다르다. 여성은 혼자 낯선 장소에서 숙박할 때 기본적인 수면도 종종 위협받는다. 얼마 전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떠올려보자. 20대에 나도 홀로 전국여행을 해본 적 있다. 그때 나는 혼자 여관에서 자는 게 두려워 당시 막 붐이 일던 찜질방에서 잤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생각했지만 이 생각도 몇 년 후 깨졌다. 안전한 곳은 없다. 성매수 문화는 여성을 교환하는 성차별의 상징이다.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될 때 이 법이 가난한 남성을 억압한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왔다. 부유한 남성과 가난한 남성 간의 성적 분배가 불공평하기에 성매수를 통해 성적으로 소외된 남성의 성생활을 보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욕망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뒤, 남성 간의 계급 갈등을 여성을 통해 덮으려 한다. 여기서 여성의 인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저 배고파서 짜장면 시켜 먹고 피자 시켜 먹듯이 음식 배달하는 일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요청이 거절당했을 때 분개한다. 종로 여관 방화사건은 돈으로 여성의 몸을 매수하여 권력놀이를 하지 못해 분한 남성이 1만5천원짜리 방에서 잠을 자던 저소득층 사람들의 삶을 앗아간 참극이다. 해외에 나와 성매수를 하거나 자식을 만들고도 무사히 돌아가 일상을 살아가는 남성들이 떠오른다. 반면 재생산 노동으로 가정에서 젊은 날을 보냈을 여성은 딸들과 함께 잠시 그 노동의 현장을 벗어나 여행길에 올랐지만 돌아가지 못했다. 고위층의 성접대 강요로 자살한 배우 장자연 사건부터 성매수를 하지 못해 저소득층 투숙객을 죽게 만든 여관 방화사건까지 모두 연결된 문제다. 남성의 돈과 여성의 몸의 교환을 정당하게 만드는 사회가 일으킨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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