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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불편한 것들을 응시하기

등록 2018-03-15 18:31수정 2018-03-16 18:09

남종영
애니멀피플 팀장

거스 켄워시는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선 꽤 인기가 높은 스키 스타다. 그는 평창겨울올림픽 기간인 지난달 식용견 농장을 방문해 개를 한 마리 입양했다. <한겨레>의 동물전문 매체 <애니멀피플>과 미국 통신사 <에이피>(AP) 등이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다. 켄워시는 개 농장 사진과 함께 한국에서의 에피소드를 하나 더 올렸는데, 야생동물 카페에 간 일이었다. 라쿤 한 마리가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고, 그는 아래서 활짝 웃고 있었다. 켄워시는 “한국 여행 중 최고 하이라이트였다”며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식용견 농장 방문을 응원한 이들은 그의 라쿤 자랑이 당혹스러웠다. 그는 동물을 사랑하는 ‘셀러브리티’로 꼽힌다. 식용견 농장에 자청해 가 볼 만큼 동물 보호에 열정적이면서 개 식용 문제에 대해서도 인종주의적 편견을 경계했다. 그는 “서구 문화를 한국인들에게 적용하는 데 찬성하지 않지만, 개 농장에서 개들은 비인도적으로 대우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려 깊은 사람인데,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야생동물 카페는 문제적 공간이다. 한국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이 카페에서 음료수를 한잔 시키면 라쿤이나 미어캣, 북극여우 등을 볼 수 있다. 동물들은 실내에 갇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만짐’을 당한다. 그러나 이 동물들은 개나 고양이처럼 인간과 교감하도록 진화한 동물이 아니다. 미어캣은 야생에서 땅을 파고 숨는 습성이 있고, 북극여우는 빙판을 뛰면서 북극곰이 버리고 간 사체를 쫓으며 산다. 유전자가 그렇게 하도록 시킨다. 야생동물 카페는 이들의 본능을 억압한다.

비단 켄워시만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모순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삽화다. 어떤 동물은 짧은 기간에 비육해 도살하여 먹거나 전시하는데, 왜 어떤 동물은 월정액 8800원짜리 도그티브이를 보여주고 장례식을 치러줄까? 우리 욕망의 모순이자 문명의 모순이다.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책 <문명화 과정>에서 “우리가 문명화라고 부르는 모든 과정은 끔찍한 것을 보이지 않게 감추어버리는 은폐와 격리가 특징”이라고 말한다. 강제수용소, 양로원, 도살장 등 문명이 보여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불편해하는 것들이다. 우아한 레스토랑 식탁에 올라오는 스테이크에서는 도살장의 음습한 냄새와 동물의 비명은 거세되어 있다. 똑같은 생명인데 어떤 동물은 은폐되지만 어떤 동물은 스타로 귀염을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순을 방관만 할 것인가? 동물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층위의 욕망과 산업에 대해 알아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1990~2000년대 서구 동물운동은 ‘은폐된 풍경을 가시화하기’를 운동의 주요 전략으로 썼다. 동물실험실에 잠입하고 도살장에 위장 취업했다. 어떤 이에게는 노동의 삶터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끔찍해 죄의식을 자극하는 곳. 켄워시가 방문한 식용견 농장도 그렇다. 평생 좁은 뜬장(바닥에 구멍이 뚫린 철제 박스)에 갇혀 산 개들은 구조될 때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으므로. 그는 개고기의 은폐된 공간을 가시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야생동물 카페에서는 그 너머의 것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에게는 생명을 대하는 측은지심이 있다.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을 사랑하는 우리의 성향을 ‘바이오필리아’라고 표현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그래서 (생명을) ‘알면 사랑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불편한 풍경을 응시할 필요가 있다. 고기 한 점을 먹을 때, 가죽 지갑을 열 때, 우리 욕망을 충족하는 데 숨긴 것들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좀더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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